요즘 대학의 안팎에서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그치지 않고 있다.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라고 해도 이번에는 정말 인문학이 무언가
절박한 문제에 부딪친 것 같다.

3년전부터 시작돼 지금은 거의 일반화 되다시피 한 학부제가 실시되면서
인문학 대학원의 진학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옛날에는 교양필수 과목이었던 국어 한국사 철학개론도 선택과목이 되자
수강생이 반이상 줄었다.

학생들의 외면으로 인문학 강좌가 잇따라 폐강되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의 국가경영철학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지식인의 강조와
시장경제논리에 입각한 구조조정 바람이 대학가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

이만하면 교수들이 하소연하는 인문학 위기의 실상을 어느정도 짐작할만
하다.

이런 인문학 위축분위기 속에서 최근 인문학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울대 인문대교수들이 자기반성을 하고 나섰다고 한다.

학자양성에 치우쳐 사회변화에 대처하지 못했고 전공을 지나치게 세분화시켜
공동연구의 효과를 외면했으며, 인문학의 중요한 책무인 교양교육을 태만히
했다는 것이 반성의 골자다.

국립대학의 인문학자들이 우리 전통학자들처럼 자기를 완성시키는 학업
(위기지학)이라도 충실했다면 인문학의 황폐화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책임은 ''뒷받침한다''는 것을 내세워 인문학의 다양한 비판의 소리를
''다스려''온 정부에도 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대학교육의 목표는 교육과 학문연구에 있다.

그러나 교육이 사라진 우리대학은 요즘 직업적 기능인을 양성하는 학원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현상은 60,70년대 신문화운동이 휩쓸던 미국대학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미국인의 문자해독력이 세계45위로 떨어진 것도 그 때다.

그로부터 연방정부는 거대한 ''인문학 진흥기금''을 조성해 대학들의 교양교육
을 활성화시켜 오고 있다.

문화와 사람됨이 산업화된 사회의 지식인에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정부가
인식한 때문이다.

진정 잘못된 과거를 반성한다면 혁신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성이 구조조정을 면하고 연구비를 따내기 위한 방편이라면
인문학의 미래는 암담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