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다산칼럼] 한국형 인사원칙 .. 박상기 <연세대 교수/법학>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정부요직인사가 있으면 등장하는 것이 신문의 인물평이다.

    이 난을 통하여 이 시대 한국의 정계나 관료사회에서 환영받는 인물이 과연
    어떠한 유형인가를 알 수 있다.

    새로이 임명된 인사가 그동안 종사해온 일이나 전문분야, 정치적 성향에
    대한 것을 평가하기보다는 출신지역과 학교, 성격과 주량, 부하들을 잘
    챙기는지 여부가 중요관심사이다.

    폭력조직도 아닌데 부하 챙기고 자기 사람 만들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고,술 잘 마시는 것이 공직생활을 잘하는데 그렇게 중요한
    능력인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덕목(?)들이 한국사회에서는 출세의 요건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여성에게 애초부터 할당된 듯한 부처에는 남성금지구역처럼 언제나
    여성이 임명되고, 반대로 그 밖의 부처에는 여성진입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전문성과는 상관없는 원칙 아닌 원칙이다.

    특히 출신지역은 가장 중요한 한국적 인사조건이다.

    중요공직에 지역을 안배하여 임명함으로써 지역감정을 없애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가장 강조되는 지역안배원칙은 사실은 가장 기만적인 한국적 인사원칙이다.

    역대 정부가 지역안배에 따른 정부인사의 공정성을 선전하였지만 현실은
    중요공직을 특정지역이 독식하였음은 인사관련 통계가 증명해 주고 있다.

    공직인사에 지역을 안배하여 임명하면 이 땅에서 지역감정이 없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특정지역 출신을 장관에 임명하는 것과 그 지역사람들의 지역감정 완화도
    와는 별로 상관없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지역감정으로 정치생명을 이어가는 정치인과 지역감정의 볼모가 되어 있는
    지역민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지역감정은 사라지기 어렵게 되어 있다.

    비극이지만 우리의 국민의식이 그러하니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20세기
    말 한국인의 운명이다.

    그렇다면 지역안배 원칙은 포기하고 전문성 우선 원칙이라도 확립하는 것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인사의 공정성의 핵심은 지역안배가 아니다.

    공직인사에서 지역적 독식이 문제이기보다는 능력과 전문성은 제쳐둔채
    오로지 고향이 같다는 이유 때문에 그 자리를 차지하게 한다는 점이 문제
    이다.

    최근 한일어업협정을 둘러싸고 빚어진 미숙함과 혼란은 현대국가에서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역력하게 보여 준다.

    그것은 공직자의 출신지역도 아니고, 해당 업무와 무관한 경력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어긋나게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해양수산부의 후임장관은 출신지역이 바닷가라는 점 이외에는
    바다와 무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바닷가 출신 해양수산부 장관의 임명이 그 지역 어민들의 불만을 누그려
    뜨렸다는 소식 역시 들리지 않고 있다.

    전문성과 청렴성이 검증된 적임자를 찾으려는 노력 대신 이런 저런 인연이
    닿는 사람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포기하여야 한다.

    옷깃이라도 스친 인연이 있어야 일을 맡기는 연고사회에서 널리 인재를
    구한다는 말은 왠지 공허하게만 들리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호남 출신이나 충청도 출신이 정부요직을 독식한다는 비판만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다.

    너무 이를 의식할 경우 역 차별에 대한 저항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오히려 능력과 전문성이 인정되는 사람이 아니라 전혀 문외한의 인물을
    임명하는 인사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신진인사를 영입하여 정치개혁을 달성하겠다고 한다.

    그 대상으로 언론에서는 각종 시민단체 간부나 학생운동권 출신들을 도표
    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하고 있다.

    어떠한 인물이 참신한 신인인지는 바라보는 시각과 활용하고자 하는 용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사람은 정치지향형 인물이 아니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갈 곳 없는 정치낭인보다는 반 정치지향적인 전문가를
    찾는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9일자 ).

    ADVERTISEMENT

    1. 1

      [한경에세이] 진정한 송구영신의 의미

      어느덧 달력의 마지막 장도 끝자락이다. 12월의 마지막 주가 되면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되감기 해본다. 희한하게도 좋았던 기억보다는 아쉬웠던 순간, 뼈아픈 실패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마음에 박힌다. 사람의 본능이 그렇다. 하지만 실패가 마음의 ‘쓴뿌리’로 남을지, 내일의 ‘자양분’이 될지는 그 기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우리는 흔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듣지만, 실패의 고통 속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 역시 머리로만 알던 이 평범한 진리를, 지난해 트레일러닝이라는 처절한 육체적 경험을 통해 비로소 온몸으로 깨닫게 됐다.당시 나는 생애 첫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험난한 산악 코스 38㎞를 제한 시간 10시간 안에 완주하겠다는 목표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내 기록은 10시간1분32초. 고작 1분32초 차이로 실격이었다.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허탈함과 분노를 느꼈다. 10시간 넘게 뛰었던 산길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오르막에서 조금만 더 뛸걸’ ‘거기서 1분만 덜 쉬었더라면…’ 후회가 밀려오자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다. 샤워장에서 차가운 물줄기를 맞으며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정신을 부여잡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관점을 ‘시간’에서 ‘완주’로, ‘실격’에서 ‘도전’으로 바꿔 의미를 부여하자 패배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뜨거운 성취감과 자신감이 차올랐다. 실격이라는 성적표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결과에

    2. 2

      [다산칼럼] 고마워, 김 부장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주인공 김 부장은 산업화 세대, 이른바 ‘오대남’의 초상이다. 이들은 ‘치열한 경쟁→빠른 승진→가족 부양’을 성취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나 중년이 되자 직장에선 MZ세대와, 가정에선 가족과 충돌하며 과거의 ‘규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다. 후반부 김 부장이 느끼는 ‘세상이 나만 남겨두고 달려가버린 듯한 감각’은 오늘의 오대남이 겪는 상실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일부 음식점 앞에 붙은 ‘50대 남성 출입 금지’ 문구 역시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인식의 균열을 드러낸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되묻는 장면은 과거의 성실함이 이제는 ‘꼰대성’으로 낙인찍히는 시대 변화를 압축한다.이 변화는 단순한 세대 갈등이 아니라 사회 질서의 급격한 전환이다. 1995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50대 이상 응답자의 71%가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답했지만 2008년엔 65%가 ‘아들이 없어도 된다’고 했다. 2024년 조사에선 딸 선호(28%)가 아들(15%)의 두 배로 역전됐다. 1992년 아들 선호가 58%였던 점을 감안하면 600년간 이어진 남아 선호는 불과 한 세대 만에 해체됐다.가정의 주도권도 재편됐다. 1990년대 30%대이던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2000년대 80%를 넘었고 2008년엔 남성을 추월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는 ‘남성 중심 부계 구조’를 ‘부부·자녀 중심 구조’로 바꿨다. 결정적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구조조정의 충격은 40~50대 남성에게 집중됐고, 직장이 존재의 중심이던 이들에게

    3. 3

      [데스크 칼럼] 의대 증원 문제, 정치는 빠져야

      이재명 정부가 의대 증원을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문제작’으로 평가받은 정책을 다시 꺼내 들 태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필수의료 강화를 언급하며 “의사를 늘리긴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도 이달 초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지역·필수·공공의료 분야에서 일할 의사가 필요하다”며 의대 증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복지부 산하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도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추계위는 이대로라면 2040년 기준 의사가 1만4000~1만8000명 부족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정부는 연내 최종 추계를 토대로 내년 초 2027학년도 이후 의대 정원을 발표할 계획이다. 국민 공감대 형성된 의사 수 확대의사 수 확대 필요성에는 상당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의료 접근성 개선을 원하는 환자와 시민의 요구가 크고 상위권 수험생의 의대 선호 현상도 여전하다. 의정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 한 여론조사업체(메트릭스) 조사에서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응답은 84%에 달했다. 일반 국민 여론 차원에서는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방향성에 큰 이견이 없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윤석열 당시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의대 증원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연간 400명의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 정부 성향과 정권을 막론하고 의사 수 확대는 반복적으로 등장해온 과제다.문제는 ‘방식’이다. 내년 발표될 의대 정원 수는 어느 수준이든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감사원이 최근 공개한 전 정부 의대 증원 감사 결과는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