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스페인의 기타음악은 스러질 위기에 처했다.

장대하고 화려한 음향을 지향하는 낭만주의 음악의 물결 속에서 음량이 작은
기타는 빛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음악가들은 기타를 민속악기, 집시의 악기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안토니오 데 토레스가 울림통이 큰 개량 기타를 만들고 "근대 기타의
아버지"로 불리는 타레가가 활약하면서 기타음악의 불꽃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으로 알려진 타레가가 부활시킨 기타음악은 안드레스
세고비아에 이어져 꽃을 피웠다.

그러나 타레가와 세고비아 두 기타의 명인을 이어준 것은 미겔 요베트였다.

기타리스트로서의 요베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풍부한 음감과 시정이
담긴 작품으로 기타음악 발전에 다리를 놓았다.

타레가의 제자인 그는 세고비아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 근대 스페인 기타음악
의 맥을 잇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위스의 디복스 라벨로 나온 음반 "토레스의 기타"는 토레스와 요베트의
작품에 담긴 다양한 표정을 조망하고 있다.

이 음반은 특히 1백13년전에 제작된 토레스기타로 연주한 것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연주자는 이탈리아 출신인 스테파노 그론도나.

토레스기타의 그윽한 저음과 윤기 감도는 여운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론도나의 하모닉스주법(왼손으로 현을 가볍게 눌러 맑은 소리를 내는
주법)도 절묘하다.

(02)522-1886.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