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원 < 미국 웰스파고은행 수석 부행장 >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지수가 마침내 10,000 고지를 넘어섰다.

한동안 숨을 고르는 듯 했던 하이테크 등 주도주들이 일제히 재도약의
기지개를 켜면서 철옹성으로만 여겨졌던 다우지수 10,000의 고지는 쉽게
허물어졌다.

이로써 미국 증시는 가일층의 상승 탄력을 받게 됐다.

미국의 소비경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온 세계경제 역시 회복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벌써부터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계는 좀더 냉정할 필요가 있다.

향후의 미국 증시를 낙관할 만한 근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29일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 종가가 10,000의 벽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결정적 재료중 하나는 30일로 예정된 공개시장조작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현재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는 미국 증시가 실물에 바탕을 두고있기 보다는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에 의존하는 "금융장세"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실제로 뉴욕 증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중남미 사태 등을
우려해 일련의 금리인하를 시작했던 작년 10월 이후 무려 30% 이상이나
뛰어 올랐다.

바꿔말해 미국 증시는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량 증가에 비례해 상승커브를
그려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FRB가 금융완화 조치를 지속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 증시의 활황을 지탱해 온 최대의 버팀목이 언제 주저앉을 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최근 증시 등 미국 경기의 과열양상으로 볼 때 시기가 문제일 뿐 FRB가
금리인상으로 방향을 선회할 것은 불문가지다.

이는 유동성 공급축소를 의미하고, 기업의 이익저하 등 전반적인 미국의
경기둔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소비지출이 주춤해질
경우 그 여파는 미국기업 뿐 아니라 미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와
중남미 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환란탈출의 돌파구를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 찾아 온 한국의 경우는
미국 증시의 향후 추이가 각별한 관심거리일 수 밖에 없다.

다행히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일부 국가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난
데 이어 일본 역시 회복의 흐름을 타고 있어 이들 국가로의 수출문호가 확대
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유럽의 경기가 신통치 않아지고 있는데다 브라질 등 중남미 경제는
언제 또다시 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

중국은 연내 위안화 절하가 예상되는 등 한국과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악재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경기가 다우지수 10,000을 고비로 하강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그 파장이 한국 등에 미칠 영향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한국의 증시가 상승세를 치닫고 소비가 되살아나는 등
회복기류를 탈 수 있었던 데는 미국증시 활황 덕이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한국 경제가 진정한 홀로서기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위해 한국은 당장 "자아 도취"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기적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해서 장기적 과제로 추진해야 할 일을
접어두고 있는 현실을 올바로 깨달아야 한다.

대기업 개혁은 "빅딜"이라는 1회용 수술로 완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맹목적인 오너 중심의 전근대적 경영관행을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등 글로벌
무한경쟁 체제에 맞는 경영시스템을 시급히 갖춰야 한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킨다는 명분아래 종국적으로는 제살깎기의 파국으로
흐르고 있는 일부 노조들의 무책임한 행태도 차제에 전면적으로 개혁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기관들이 진정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임직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조직을 축소한다고 한들 경영기법을 선진화하지
않는 한 무한 경쟁시대에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매각 뒤처리 과정에서 본질
보다는 표피적 문제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 중요한 것은 자산에 대해 몇푼 더 받거나 덜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은 좀 손해를 보는 것 같더라도 선진 외국 금융기관의 경영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받을 수만 있다면 훗날에 얼마든지 과실을 키울 수 있다.

당장의 문제에 일희일비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을 뼈 아프게
되새겨야 한다.

미국 증시의 다우지수가 어떤 행보를 보이건, 미국 경기가 어떤 궤적을
그리건 상관없이 탄탄하게 홀로 설 수 있는 한국경제의 "큰 그림"을 지금
부터라도 소홀함 없이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