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10년 1월 서울 J병원.

반도체 장비를 제조하는 B사의 건강검진이 한창 진행중이다.

아프리카 현지법인에서 15년간 근무한뒤 최근 본사로 복귀한 최모(45)씨가
접수창구에 섰다.

보조개와 쌍꺼풀이 인상적인 간호사가 친절하게 맞이했다.

"MRS 검사부터 받고 오세요"

"MRS요, 그게 뭡니까"

최씨가 반문했다.

간호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설명해 주었다.

"신체조직내 세포 등의 대사상태를 포착해 암등 각종 질병을 초기단계에서
발견해 내는 기계입니다. 자석장치 안에 환자를 눕히고 FM 라디오와 같은
전파를 쏘면 인체내 각 조직의 구성단위인 대사물질(분자)로부터 나오는
정밀한 정보를 받아 분석해 주는 첨단장비입니다. 우리말로는 자기공명분광
(Magnetic Resonance Spectroscopy) 장치라고 하지요"

최씨는 MRS실에 들어갔다.

5분정도 누워 있으니 MRS실 기사가 끝났다고 말했다.

다른 검사를 하고 있는데 방사선과에서 연락이 왔다.

인자하게 생긴 의사가 입을 열였다.

"크게 놀라지는 마십시오. 선생님은 뇌종양이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뇌종양에 걸렸다는 이야기인가요"

최씨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직은 아닙니다. 뇌의 대사물질인 뉴런 크리아틴 클린 등 간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향후 수개월내 뇌종양이 발병할수
있습니다. 물론 옛날 같으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겠지요"

"결국 뇌종양이라면 뇌수술을 받아야 하겠지요. 장기간 입원하면 회사
일부터 하지 못해 큰 일인데..."

"안심하십시오. 피부와 두개골을 절개하지 않은채 병소 부위에만 감마선을
쏘는 감마나이프 수술로 간단히 해결됩니다. 수술받은뒤 다음날 퇴원할수
있고요"

최씨는 불안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았다고 모두 완치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MRS는 정확한 진단뿐만 아니라 수술한뒤 어느정도
회복될지까지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수술이 끝나자마자 MRS로 진단한뒤 새로운 문제점
이 예상된다면 적절한 추가 치료 방안을 강구할수 있습니다"

최씨는 다소 가벼워진 마음으로 방사선과를 나오다가 핵의학과 앞에서
고교동기인 이모(45)씨와 오랜만에 만났다.

"정말 반갑다. 그런데 얼굴이 별로 좋지 않구나"

"허혈성 심근질환이 우려된다는 거야. 심장 자체에 피를 공급해 주는
관상동맥이 곧 좁아질 수 있어 심장마비로 이어질수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어"

"큰일났네. 조직검사부터 했겠구나"

"그렇지 않아. 피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어. PET라는 장비로 내 몸을 찍어본
뒤 그런 결과가 나왔지. 양전자방출 동위원소 등을 인체에 투여한뒤 그
분포를 촬영해 몸 속에서 일어나는 대사과정이나 생화학 반응을 파악하는
장비라는 거야. 우라말로는 양전자단층촬영이라고 한다나. 암환자의 암조직
은 정상조직보다 훨씬 왕성한 대사기능을 갖고 있어 암조직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미리 발견한 만큼 약물치료로 끝날수 있다는
거야"

그로부터 6개월뒤 이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병원내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최씨는 그간의 소감을 말했다.

"모든 첨단기술이 의료분야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 무병장수가 인간의
본능이니까 어쩔수 없겠지. 우리를 구한 21세기 의학을 위해 건배를 들자고"

< 최승욱 기자 swchoi@ >

[ 도움말 주신분 =서울중앙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소 이정희 박사
인천 중앙길병원 김영보 신경외과과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