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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보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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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소문에서 조선호텔에 가려면 지하도를 두번 건너야 한다.

    아니면 지하도로 롯데백화점까지 갔다가 지상으로 나와 한참을 되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중학동 한국일보 앞에서 건너편 미대사관저 쪽으로 가기 위해선 횡단보도
    두곳 이상과 육교 혹은 지하도를 통과해야 한다.

    보행권은 당연하고 기본적인 권리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공사장 근처를 걸어가는 사람은 의레 차도쪽으로
    밀려나거나 보도위에 함부로 쳐진 비계때문에 가슴을 졸여야 한다.

    시장에선 보도위에 쌓인 물품 사이를 곡예하듯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하기
    일쑤다.

    멀쩡했던 보도가 건물 신축 뒤에 걷기 힘들 만큼 잔뜩 경사지는 일도
    흔하다.

    버스대기소를 설치한다고 가뜩이나 좁은 보도를 아예 없애다시피 해놓은
    곳도 많다.

    뿐이랴.

    횡단보도는 사람을 위한 건지 차를 위한 건지 알기 어렵다.

    켜지자 마자 깜박거리는 녹색등은 청장년조차 불안한 마음으로 종종거리게
    한다.

    녹색등이 켜진 7초뒤부터 찻길 폭(m)에 해당되는 시간(초)만큼 깜박거리도록
    만들었다지만 이런 내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내의 보행자사고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도 이같은 보행권 무시와
    무관하지 않다.

    보행권이 박탈된 길은 개발 위주의 사회발전전략이 만들어낸 부실도시의
    어두운 단면중 하나다.

    걷기 어려우니 자동차를 탄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마당에 일흔넘은
    할아버지가 보행권 되찾기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반가운 한편으로
    죄스럽다.

    보도의 경사가 지나치면 보통사람도 불편하려니와 노약자나 시각장애인
    휠체어 사용자들에겐 치명적이다.

    계단으로 된 육교나 지하도 중심의 길은 이들에게 외출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우리 모두에겐 마음놓고 거리를 활보할 권리가 있다.

    분통터지는 일이 있어도 무심코 걷다 보면 자신과 상대방을 용서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부터라도 보행권이 보장되는 도시, 즐겁게 웃으면서 걸을수 있는 길을
    만드는데 보다 많은 배려와 투자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7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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