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 <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실장 >

"모순"은 별게 아니다.

창과 방패가 자리를 함께 한 것일 뿐이다.

무엇이든 뚫어야 하는 물건과 뚫리지 않는데 존재의의가 있는 물건이
한자리를 하게 되면 둘중 하나는 시쳇말로 꽝이라는 게 드러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등정치수학에
문외한인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은 혼돈스럽기만 하다.

개혁을 부르짖는 집단과 보수를 표방하는 집단간 동거가 언제까지나 파열음
없이 이어진다면 오히려 그것이 모순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도무지 명쾌하지는 않다.

최소한 20표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오는 공동여당내 반란표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지, 정치적 동기나 계산이 무엇인지 정말 아리송하기만 하다.

반란표의 규모가 작지않기 때문에 조직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고 보면 더욱 그런 감이 있다.

그렇다고, 역시 정치하는 사람들은 복잡하고 상식만으로는 그 행동을 예측
하기 어려운 존재라며 넘어가면 그만일까.

한나라당쪽 움직임도 그렇다.

동료의 체포동의안 부결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하겠지만
당총재가 마이크까지 잡고 노래할 정도의 경사인지...

현 정부의 사정이 편파적이라는 시각도 결코 적지않은게 사실이지만 국민
들을 의식했다면 그런 자세가 꼭 옳았는지는 의문이다.

서 의원이 구속되지 않게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사람중에서도 그런
느낌을 갖는 사람들은 없지않을 것이다.

경제기자 입장에서 서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본격적인 정치계절을 앞당길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다.

이번 일로 두 여당의 제휴형태나 내각제논의가 어떤 영향을 받게될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는 몰라도 "정치인들이 즐기는 정치"가 제
철을 맞고 그런 분위기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IMF로 움츠러들었던 소비가 이제 옛날 수준을 되찾는등 경제가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는듯한 국면이고 보면 정치인들이 꺼릴 것도 없다고도 하겠다.

정치가 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긴 하지만 차라리 잘됐다는
느낌도 없지만은 않다.

언제까지나 내재하는 모순보다는 창과 방패가 부딪쳐 그것이 드러나는게
발전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된다.

불분명하고 복잡한 정부.여당구조, 당인들의 당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야당은
문제다.

색깔도 없고 정책의 선택도 불분명한 정치, 그래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IMF라는 특수상황이 갈등의 돌출을 막는 일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런 경제상황도 아니고 보면 임기응변적 봉합이 아니라 근본적 선택을
분명히 해야할 때가 됐다고 본다.

노사정위만 하더라도 그런 현실인식을 갖게한다.

IMF로 대규모 고용조정이 이루어지고 봉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산업현장이
그런대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노사정위의 역할이 컸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현정권의 치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IMF라는 특수상황
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노사정위 위상과 기능은 출범당시의 그것과는 현저히 달라
졌다.

노사간 갈등을 봉합하고 조정한다기 보다는 그 자체가 갈등을 촉발하는
장이 될것 같은 양상이다.

2002년부터 노조전임자의 임금을 기업에서 주지못하도록 돼있는 노동법관련
조항 개정이 보장되지않으면 노사정위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노측 주장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측 주장중 어느쪽이 타당하냐는 것은 다음다음
문제다.

시급하지도 않은 이런 사안으로 불협화음이나 낳을 노사정위가 꼭 있어야
하느냐를 따져볼 시점이 됐다고 본다.

바로 그런 변화가 요구되는 것은 비단 노사정위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정책선택의 근본과 관련되는 것이다.

권력구조건 경제정책이건 선택을 분명히하고 선거를 통해 그에 대한 심판을
받는 것이 정당정치의 본질이다.

이제 정치여건도 그렇지만 경제상황도 바로 그렇게 하기를 요구한다고 본다.

정치개혁은 바로 그런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