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김영배 총재권한대행은 비호남권이면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신임이
비교적 두터운 "DJ맨"으로 꼽힌다.

소신과 의리를 중히 여기면서 특히 한번 맡은 일은 뚝심으로 밀어붙여
반드시 이뤄내는 그의 추진력을 김 대통령이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김 대통령의 결정적인 신임을 얻은 것은 지난 87년 전두환 대통령
정권 당시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신민당 내분사태가 계기가 됐다.

당론이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반대하고 내각제 주장을 펼쳐온 이철승
징계문제로 당이 어려웠을 때 남들이 꺼리던 당기위원장직을 자청, 이철승
씨와 담판을 벌여 그를 제명하는 뚝심을 보여준 일화를 남겼다.

그후 87년 창당된 평민당에서 초대 사무총장으로 13대 총선에서 "황색"
돌풍을 일으키는데 앞장섰다.

지난 93년에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으나 김
대통령은 그에게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을 맡겨 신임을 거듭
확인해줬다.

지난 63년 야당의 영등포지구당 간부로 정계에 발을 디딘 그는 35년 가까운
골수 야당 생활을 하면서도 서울에서 내리 5번 당선됐다.

부인 박창례씨와 1남1녀.

<>충남 논산(67)
<>10,12,13,14,15대 국회의원
<>신민당 당기위원장
<>민주.평민당 사무총장
<>국회 노동위원장
<>민주당 최고위원
<>국민회의 부총재
<>국회 부의장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