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최근들어 경쟁적으로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고 있지만
앞으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보험의 책임한도를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임원배상책임보험(Directors & Officers Liability Insurance)은 임원이
직무상의 의무 위반이나 실수등으로 회사와 제3자에 대해 배상책임을 져야할
경우 배상금과 소송비용을 지급하는 상품.

지난해 제일은행 전직 임원 4명에 대한 4백억원의 배상판결이후 가입건수가
급증, 현재 1백5건(보험료 2백25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 보험이 결코 부실경영행위에 대한 책임추궁을 막아내는 안전판이
될 수 없다는 것.

책임한도는 물론 보상기간, 보험금 지급사유 등이 임원들의 "기대"와는
차이가 난다.

<>보험책임 한도 = 현재 판매되는 임원배상책임보험은 보험기간중 실제
보험금 청구가 이뤄진 경우에만 적용되는 클레임 메이드(Claim-made)형이다.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임원재직기간중 부실경영행위 발생"과 "주주및
제 3자의 책임추궁 제기"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현재 임원배상보험의 기간은 1년.

이 기간내에 손해배상청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보험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반면 보험기간내에 보험금 청구사유가 발생한 경우까지 보험금이 지급되는
어커런스 메이드(Occurance-made)형 보험도 있다.

물론 보험료가 비싸다.

대신 임원직에서 물러난 이후 손해배상이 제기되더라도 보험기간중 발생한
사유라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실제 보험기간은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소멸시효와 같은 셈이다.

<>보험기간 = 보험사는 보험기간 만료후 자동연장 조항이 있는 만큼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임원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새 임원이 가입자로 대체될 경우 보상규정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

특정임원에 대한 보험이 아닌 임원직 자체에 대한 보험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임원직에서 물러난 후 회사조직의 변경이 이뤄진 경우 문제는 달라
진다.

후임임원이 없어진 경우 자동연장조항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더욱이 회사가 파산한 경우 임원이 고액의 보험료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보험사는 회사가 파산한 경우 기존 클레임형 보험을 어커런스형으로 전환할
것인지 여부를 임원에게 물어보고 보험기간을 확정해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5년으로 정할 경우 회사 파산후 5년까지 "안전"한 셈이다.

대신 기존 보험계약자인 회사가 소멸된 만큼 보험료 부담은 임원이 져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현재 약관상 파산회사의 임원들은 사실상 임원배상책임
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문제는 국내보험사가 기업환경이 전혀 다른 미국보험약관을 그대로
보고 옮긴 데서 비롯됐다.

미국의 경우 클레임 메이드형 상품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한국적"상황에서는 클레임 메이드형보다는 어커런스 메이드가 적합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제일은행 전직 임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임원퇴직 2~3년
이후에 이뤄졌다.

로펌의 한 변호사는 "약관심사과정에서 이같은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며 "현재 약관대로라면 임원들이 퇴직후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