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구장을 가로지르며 하늘을 나는 하얀 공에 우리의 시선이 모아진다.

답답했던 일상의 찌꺼기도 그 공을 따라 날아간다.

한 울타리지만 서로 다른 전문 분야인 제작PD 카메라맨 방송기술 세트제작
등 자신들의 옹골찬 고집과 개성을 가진 18명이 뭉친 우리 "대교방송 야구단"
은 97년 가을 창단했다.

처음에는 방송국내 부서대항전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남달리 야구에 소질(?)이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팀답게 프로야구팀처럼 이름도 "대교방송 Warriors"로 지었다.

삐죽나온 배에 모두 유니폼을 우겨 맞추고 폼나게 나섰던 처녀경기는
벽산건설과의 한판 승부였다.

7회가 그렇게도 길고 괴로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대패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경기를 통해 동호인야구라도 기본기와 팀웍에 따라
전력의 차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후 타 구단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조직력의 극대화와 기본기 확충이라는
절대적 과제를 풀어 나갔다.

계속된 훈련을 통해 98년에는 친선경기 5연승이라는 "대업"도 이루어냈다.

그러나 5연승이라는 자신만만함이 화근이었을까.

정작 동호인야구 정식리그가 시작되자 내리 4연패했다.

그것도 모두 역전패였다.

뒷심이 딸린 탓인지, 리그 마지막 게임은 지각을 이유로 3점을 상대방에
먼저 주고 시작해 가까스로 무승부가 되는 등 리그성적은 2무4패였다.

결과적으로 리그 1승의 꿈은 월드컵 1승의 꿈과도 바꿀 수 없는 염원이
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야구시합이 있는 날 특별히 근무를 빼주고 격려를
보내던 팀장들의 눈빛이 고울 리 없었다.

특히 IMF에 따른 운영자금 압박으로 지난 겨울 팀은 존폐의 위기까지
갔었다.

그러나 그렇게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밀린 회비를 회원들에게 받고 동계훈련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코트라리그에 가입하고 지난 2월 28일 올들어 첫 공식경기를 가졌다.

아-, 승리란 정말 이렇게 짜릿하고 감동적인 것이었나.

상대방팀을 8대4로 제압하고 맛본 1승의 단 맛-.

그리고 뒤따른 생맥주의 시원함.

이 맛이 바로 야구였다.

일상을 벗어나 푸른 잔디위에서 치고 달리며 한 점이 되어버린 우리-.

패배의 쓴 맛을 알기에 직장내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격려하는 우리.

자 이제 날자- 날자- Warriors여.

다시 한번 푸른 창공을 향해...

김인희 < 대교방송 영상제작팀 P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