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영상미디어센터 3층에 있는 20여평 규모의 가상
현실 스튜디오.

이곳에 들어서면 좌우 1백50도로 펼쳐진 와이드 스크린에 압도당한다.

중앙에 있는 자전거에 올라타자 화면에는 KIST 전경이 가득 펼쳐진다.

"크리스탈 아이"라는 입체 안경을 쓰면 마치 KIST 안에 들어와 서 있는
느낌이 든다.

페달을 밟자 자전거가 움직인다.

본관앞을 지나 핸들을 왼쪽으로 돌려 언덕배기를 향했다.

언덕을 오르자 발에 힘이 부친다.

페달에 힘을 가해야 제대로 올라간다.

핸들을 1백80도로 틀어 내리막길을 달렸다.

자전거에 가속도가 붙는다.

브레이크를 잡아야 할 정도이다.

순간 핸들이 방향을 잃고 벽에 부딪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에 충격이 가해져 온다.

방향을 바꿔 본관앞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안으로 들어서자 새소리와 함께 꽃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목련, 개나리, 채송화 등의 향긋한 꽃냄새가 실제 정원속을 지나기라도
하듯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

봄이 완연히 온 느낌이다.

자전거에서 내려 이번에는 "사이버 석굴암"을 구경하기로 했다.

버튼을 누르자 화면 가득히 석굴암 전경이 나타난다.

손가락을 정면으로 가리키자 석굴암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내부에 들어서니 석굴암의 자태가 손에 닿을 듯 다가온다.

평면이 아닌 입체 모양 그대로이다.

구석구석 살펴본 후 손가락을 위로 향했다.

그랬더니 마치 몸이 위로 "붕" 뜨는 기분이 든다.

위에서 석굴암의 내부를 내려다보니 색다른 맛이 난다.

KIST가 선보인 3차원 가상영상은 이처럼 현실과 가상세계를 분간 못하게
할 정도로 실감나다.

가상현실 스튜디오는 KIST가 3년전부터 모두 10억여원을 투입해 개발한
첨단 시설.

그런만큼 이 스튜디오는 단순한 영화 스크린이나 방송 스튜디오와는 전혀
다르다.

기존에 봐왔던 3차원 게임등보다도 현실감이 훨씬 뛰어나다.

KIST는 실감나는 3차원 영상을 제공하기 위해 각종 첨단 기술을 동원했다.

1백50도 와이드 입체화면은 천정에 있는 3대의 대형 프로젝터에서 각기
다른 각도로 쏘아진 영상으로 구성된다.

자전거 여행"에서처럼 언덕을 오를때 힘이 부치거나 벽에 부딪칠 때 실제와
같은 충격이 가해지는 것은 정교한 컴퓨터로 처리된다.

예컨대 몇도의 오르막에서는 어느정도로 페달에 힘을 가해야 되는지를
입력한다.

또 정원을 지날때 꽃향기가 나는 것은 "향기제어 시스템"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석굴암"은 실제 석굴암의 내부를 3차원(3D) 스캐너로 모형을 떠
그래픽 디자인한 것이다.

따라서 입체영상에서 볼수 있는 석굴암은 실제 모습과 똑같다.

KIST 영상미디어센터에는 이밖에도 "몰입형 가상미팅 체험 시스템"이나
"3차원 모델링", "무안경식 입체영상 시스템" 등이 설치돼 있다.

<> 몰입형 가상미팅 체험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과도 실제 바로 앞에 앉아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3차원 영상회의 시스템이다.

단지 화면을 보면서 원거리의 사람과 대화하는 영상회의 시스템과는 개념이
다르다.

HMD(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를 머리에 쓰면 원거리에 있는 상대방 모습
이 바로 앞에 나타난다.

서로의 표정을 보면서 대화할 수 있다.

대화도중 눈을 옆으로 돌리면 책상과 꽃병 등도 보인다.

가상의 회의실안에 두사람이 앉아 대화를 나누는 셈이다.

물론 세사람이상도 가능하다.

영상미디어센터 고희동 박사는 "이 시스템은 실감형 원격회의 시스템이나
참여형 TV 방송, 몰입형 원격교육 등의 분야에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3차원 모델링 =3백60도에서 바라본 사물의 모습을 저장해 한데 합성하는
개념이다.

사물의 모습이 입체감있게 나타나게 된다.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영화 방송 게임등에서 실감나는 영상을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실생활에도 응용할 수 있는 범위는 넓다.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그런 예이다.

모델하우스를 3차원 모델링 기법으로 제작하면 구매자는 직접 모델하우스에
가지 않고도 입체 영상을 통해 아파트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전자상거래 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다.

예컨대 중고차를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3차원 모델링된 중고
자동차를 실제처럼 살펴보고 운전해 볼 수도 있다.

[ 어디에 활용되나 ]

흔히 알고 있는 공상과학 영화나 3차원 게임 외에도 가상현실(VR) 기술이
응용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일상생활에 응용하는 범위도 넓다.

KIST의 가상현실 스튜디오의 경우 체력훈련장의 각종 시설에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런닝 머신에 이 장치를 적용하면 공기맑은 등산로를 실제 달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스튜디오 안에서도 히말라야의 높은 산을 오르는 훈련이 가능하다.

고공 낙하훈련도 마찬가지.

이미 파이럿이나 우주비행사는 실전에 나서기 전에 3차원 가상 시뮬레이션
실험을 필수적으로 거친다.

가상현실은 환자의 치료에도 쓰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환자에게 가상의 높은 공간을 만들어 적응하도록 하는
것 등이 그런 예이다.

영상미디어센터 김형곤 박사(센터장)는 "가상현실 기술은 이론적으로 인간
현실생활의 모든 부문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응용범위가 넓다"고 말했다.

< 정종태 기자 jtch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