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라는 종교적 가르침과 사형까지 선고해야 하는 법관의 업무를 조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인간으로서는 용서하되 법관인 만큼 판단은 공정해야 한다"

14일 사법연수원 강당에서 한 사법연수원생과 김수환 추기경이 주고 받은
말이다.

김 추기경은 이날 30기 연수원생 7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과 인간"
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선문답같기도 한 이 두 마디에서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법관의 종교적
갈등을 읽을 수 있다.

김 추기경은 "법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며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가, 법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연수생들에게 던졌다.

추기경은 우선 "군사정권 시절에는 고문으로 유죄가 인정돼 옥살이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과거의 법태도를 지적했다.

추기경은 이어 "나도 전화감청과 우편 검열의 대상이었다"며 "국민의
정부에서도 공안사건출소자에 대한 사찰이 남아있는 것은 잘못"이라며 현
정권을 꼬집었다.

그는 이어 "헌법에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는다고 돼
있는 것은 법의 근본이 인간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데 있기 때문"
이라고 법정신을 풀이했다.

추기경은 특히 "레 미제라블"을 예로 들어 "모든 것을 법의 잣대로 볼 수
없고 법관도 잘못할 수 있는 만큼 항상 고뇌하고 최선을 다하는 법관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 손성태 기자 mrhan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