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이미 한국경제가 바닥을 치고 일어서 올해 성장률이 4%대를
넘보게 됐다고 보고있는 반면에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는 99년도
한국의 국제경쟁력을 과거 어느 때보다 낮아진 38위로 발표해 의아해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본시 IMD가 그리 대단한 권위가 있는 기관이 아니므로 발표 등급의 높낮이에
과민반응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우리네 속사정을 꿰뚫어 보인 것 같아 뜨끔하게 켕기는 대목이 없지
않다.

과연 우리는 경제위기를 극복하였는가.

그 해답은 위기의 구조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다.

필자처럼 외환<-금융<-실물(경영과 노동)<-관료와 정치<-사회문화로 맞물린
양파구조로 파악하는 관점에서는 아직도 미해결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본다.

위기 구조의 표피인 외환부족 문제는 일단 숨을 돌린 것으로 보이고 금융
위기는 크게 손질됐으나 은행부문을 제외한 비은행 부문에는 아직도 지뢰
투성이다.

구조조정을 빙자한 관치금융 폐습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강도가 높다.

자율금융의 꽃은 아직 멀었다.

실물경제 부문의 개혁은 이제 진통을 시작하고 있는 단계다.

"워크 아웃"에 들어간 기업들의 성공률이 매우 낮다.

대기업들의 업종 교환, 이른바 "빅딜"은 상당 부분 그 성사여부가 아직
불투명하다.

부채비율 2백%로 낮추기도 연말까지 달성여부가 미지수다.

최근 잇따른 KAL기의 추락사고는 낡은 기업경영 마인드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소업체 등 깨기 쉬운 쪽박을 찬 일부 노동시장에서는 정리해고 조기퇴직의
뼈아픈 고통이 확산되고 있다.

반면 공공부문과 대기업 부문의 철밥통을 찬 노조들은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있다.

19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간 지하철 노조에 이어 한국통신 노조도 오는
26일부터 파업을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정부의 인기영합이 합세해 전임 노조 보수금지가 도로아미
타불이 되고 철밥통 노조의 지위가 더욱 확고해질 공산이 크다.

이래저래 앞으로 한두달간 노동시장에서 향후 한국경제의 국제경쟁력 국제
신용도가 판가름 날 것이다.

관료의 규제 마인드는 여전하고, 정치권의 행태도 백년하청이다.

최근 고관집 절도사건이 화제를 뿌리고 있다.

돈봉투 다발이 나온 것은 사실인 것같고, 외화가 든 007가방은 진실여부가
아리송해 보인다.

절도범의 횡설수설하는 진술과 얼버무리는 듯한 경찰수사에도 불구하고
숨길 수 없는 것은 과거 어느 정권시대나 마찬가지로 고관자리와 돈의
끈끈한 관계이다.

97년 환란의 밑바닥에는 관료및 정치계의 불투명성, 부도덕성, 권위주의
폐습이 깔려있다.

현정부가 과거정부에 비해 이런 면에서 떳떳할 수 있는가.

그 해답의 지극히 작은 단면이 금번 절도사건에서 드러났을 뿐이 아닐까.

계약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법집행, 상거래 약속을 지키는 신용
질서가 있어야 시장경제가 꽃을 피운다.

법보다 권력 주먹 생떼가 앞서는 사회, 빈번한 보험사기사건에서 보듯 모두
도둑같이 도덕심을 버리는 세상에서는 시장경제는 약육강식이 제도일 따름
이다.

우리 사회는 시장경제의 사회 제도적 기반조성에 얼마나 성공하고 있는가.

수천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신문사중 어느 하나 폐간 소식이 없다.

언론기관의 광고 강매에 따른 기업부담과 대출연체에 따른 금융기관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만 있다.

한편 신용질서 부재가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일각에서
는 아마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심용인듯 신용불량자 사면조치를 구상하고
있다고 들린다.

은행이 신용자료없이 무엇을 기초로 대출고객을 평가하란 말인가.

정부와 경제주체들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국제 투기자금과 일부 관료의 정책
오류 탓으로만 보고 싶어하고 자기 반성과 자기개혁 노력에는 인색하다.

우리는 아직 어느 한 측면에서도 지뢰밭 제거에 성공하고 있지 않다.

이래서 한국은 과거 브라질 멕시코 등이 그랬듯이 수년내에 또 하나의
경제위기를 스스로 조성하고 있는 셈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