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가액은 작고 사건당사자는 많은 소송"

소비자보호소송의 특징이다.

철저히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변호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대표적인 사건 유형
이다.

수임료나 성공보수금이 낮기 때문이다.

최대 고객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만큼 잠재적 고객의 이탈도
무시못할 불이익이다.

변론준비에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점도 이들 소송을 회피하는 이유다.

불공정 거래나 제품의 하자가 소송 원인의 대부분인 만큼 변호사가 전문적인
기술내용과 까다로운 법리를 완벽하게 알아야만 승소할 수 있다.

일례로 전자제품의 하자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제품구조나 조립공정에
대해 기술자 못지않은 지식을 갖춰야한다.

외국사례의 수집과 기존판례의 검토는 필수적이다.

소비자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들의 어려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선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규합하는 소송 전단계에서부터 벽에 부딪히기
일쑤다.

서로의 이해득실이 달라 다수의 피해자를 일사불란하게 유지시키기가
어렵다.

특히 기업의 지연작전을 물리치고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가기는 더욱
힘들다.

기업과 치뤄야 할 심리전도 변호사가 할 일이다.

기업의 각개격파전략에 맞서 "장외전쟁"을 치뤄야 한다.

개인이 입은 피해액수가 인명사고가 아닌 이상 5백만원을 넘기기 힘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대열"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중간에서 소액에 합의를 보고 소송을 취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업들도 이러한 약점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소비자보호원 분쟁조정국의 조정에 승복한 기업이 거의 없다는데서
나타난다.

소보원의 조정결정은 법률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같지만 기업들이 이에
불복, 결국 소송으로 이어진다.

소송진행과정에서도 기업들은 잦은 변론연기신청으로 시간을 끌고 결심이
끝난 단계에서 변론재개를 요청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진을 빼놓는다.

소송을 의뢰한 피해자들이 지칠 때 쯤 개별적으로 합의를 유도한다.

소액사건의 경우 미제사건이 4백~5백건씩 밀려있는 단독판사가 처리하는
한국법원의 현실도 성의있는 판결을 기대하기 힘들게 만든다.

게다가 손해액의 정확한 산정과 입증이 쉽지 않다.

종묘사가 판매한 불량씨앗으로 수확량이 감소했거나 한전측의 관리소홀로
농작물이 얼어죽은 경우 예상수익을 산정하더라도 법원에서 전액 인정받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한마디로 우군의 지원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싸워야 한다.

소송만능사회로 불리는 미국의 경우 80만명으로 뒷받침되는 풍부한 변호사
시장과 집단소송제와 같은 제도적 도움이 소비자주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하루 수십만건씩 쏟아지는 판례와 이를 중시하는 실용주의 법률문화도
자리잡았다.

한국은 시민단체와 소비자 보호운동을 전담하는 변호사가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며 이 차이를 메꿔야 한다.

결국 철저한 봉사정신과 책임의식으로 무장해야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