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사태가 꼬이고 있다.

지구촌의 걱정거리임에 틀림없다.

예전 같으면 뉴욕이 시끄러웠을 것이다.

UN(국제연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미국과 서방유럽은 UN을 잘 찾지 않는다.

도움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상임이사국체제로 운영되는 UN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유고슬라비아의 맹주였던 러시아가 NATO와 미국측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리
없다.

중국 또한 거부권행사를 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치정부지위라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티베트를 힘으로 짓누르고
있는 것이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어쩌면 유고슬라비아와 똑같은 입장에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 워싱턴은 정말 바쁜 도시가 됐다.

이번 주만 하더라도 대규모국제회의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NATO 창설 50주년을 기념함과 동시에(23일,25일) 코소보사태
해결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각국의 고위층이 줄줄이 워싱턴을 찾는 바람에 호텔방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회의 기간중 일부시가지는 아예 폐쇄된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이 주관하는 춘계연차총회도
20일부터 28일까지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다.

내로라는 세계경제인들이 다 모여들었다.

지난 월요일에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사람들까지 워싱턴을 찾아와 99년
세계경제전망을 발표하고 돌아갔다.

아시아권역을 벗어나 발표 해본 적이 없는 예측 보고서지만 이제부터는
매년 워싱턴에서 발표하겠다는 계획까지 덧붙여 놓고 돌아갔다.

이제 UN은 없다.

다만 US(미국)가 있을 뿐이다는 소리까지 있다.

구소련붕괴이후 워싱턴 중심적 사고는 그 농도가 짙어지고 있다.

미연준리(FRB)는 마치 세계의 중앙은행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월 스트리트는
세계경제의 거울처럼 여겨지고 있다.

무디스와 S&P등 신용평가회사(rating agency)는 그 어떤 대상도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대와 LG반도체의 합병까지도 미국의 독점
금지법의 이른바 역외적용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어떤 의미에선 UN을 대신한 US, 신인터내셔날리즘, 팍스 아메리카나는 모두
동의어인지 모른다.

< 워싱턴 = 양봉진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