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어 남기는 것중에는 이름외에도 재산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결국 죽게되지만 죽은 뒤 상속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남기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특히 생전에 큰 지위를 누리거나 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일수록 상속이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원래 상속이란 어떤 사람이 지닌 권리.의무를 사후에 그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신분상속과 재산상속이 있다.

신분과 재산의 분화가 이뤄지지 않던 고대에는 신분이 상속되면 재산도
함께 상속됐다.

그러나 사회가 분화되면서 신분상속과 재산상속은 별개로 다뤄지기 시작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신분상속은 장자상속이 원칙이었다.

재산상속은 장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가운데 공동분할 상속의 전통이 대체로
지켜져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다른나라에서는 그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상속
관행이 있다.

기업경영권의 상속이 바로 그것이다.

기업경영권의 상속은 신분상속과 재산상속이 결합된 형태라 할수 있다.

상법상 회장이나 사장의 선임은 이사회의 의결사항이다.

그러나 이는 외형상의 모습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후임 회장이나 사장의 선임은 사실상 기업 총수가 사전에
대상자를 지명하고 이를 사후적으로 이사회에서 추인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뒤가 뒤바뀐 꼴이다.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사들의 임명권이 사실상 총수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에 이사회가 총수의 사전결정에 반대의견을 내기가 어려운 것이
한국적인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총수가 지명한 사람이 그대로 후임사장이나 회장이 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장이나 회장이 될 사람의 경영능력을 공개적으로
검증할수 있는 기회가 막혀버리는 것이 문제다.

총수가 경영승계자를 결정할 경우 이를 자기 자식중에서 고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사장이나 회장은 경영자이기 때문에 경영을 잘하는 사람중에서 뽑는 것이
옳다.

물론 총수의 아들들가운데 경영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그도 당연히
후보에 포함될수 있다.

문제는 경영에 소질이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총수의 자식이라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총수자리를 차지하게 해서는 그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관행은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최근들어 선대가 잘 키워놓은 기업들이 창업2세의 잘못된 경영으로
인해 쓰러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는 유능한 경영승계자를 정하는 일이야말로 그 기업의 장래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일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세상만사 옳지않은 일은 오래가지 못한다.

또 우리의 경제사회 발전단계에 걸맞지 않은 것은 하나둘씩 고쳐나가야
한다.

더구나 요즘 같은 세계화시대에는 아무리 오랫동안 지속돼온 관례라 해도
그것이 국제적인 기준이나 관행에 비추어 합리적이지 못할 때는 대안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지금 각분야에서 변화와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특히 기업부문에서
특단의 구조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기업경영권의 일방적 승계라는 구시대적
관행은 빠른 시일내 시정될 필요가 있다.

해당기업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의 도약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도 부의 세습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반대로 양자를 분리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의 세습이 더 잘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경영능력이 없는 사람이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얼마 안가 신분과
재산이 동시에 날아갈 수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1차적으로는 기업을 위한 것이지만 나아가서는
대주주 당사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부의 지탱이 더 오래갈 수도 있고, 경제력 집중에 대한 세간의
곱지않은 시각도 많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자식들에게 빵을 물려주기보다는 빵 만드는 방법을 물려주라"는 서양 격언
을 다시한번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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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