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은 이맘 때면 수양버들이 어린 처녀처럼 수줍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플라나타스가 새 순을 내밀어 흔들고 길 아래 반짝이는 강물이 시간마다
계절마다 표정을 바꾸던 길이었다.

꼭 어디에 도착한다는 생각보다 그 길을 천천히 지나가는 것, 그것이
목적이고 해방이었던 아름다운 길이었다.

팔당댐을 지나 강을 끼고 양수리 서종리 가는 길은 엉겅퀴도 피어 흔들리고
민들레씨도 날리던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래 행락객이 좀 붐비고 차가 막혀도 괜찮았다.

얼마 전에 양평가는 길에 다리가 새로 놓이고 대대적인 도로 확장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이젠 차도 안 막히고 눈감짝할 새에 양수리를 지나 서종리 또는 금남리
까지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길은 구불거리지 않고 죽 뻗어 속도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달리기만
하는 길이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눈뜨고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 되었다.

가로수는 다 뽑혀 어딘가로 사라졌고 반짝이는 강물 대신 콘크리트 차단
벽만 보다 지나쳐 가는 길이 되었다.

가로수도 민들레도 엉겅퀴도 반짝이는 강물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어디든 왜 이렇게 빨리 가야 되는가, 빨리 가고 싶어 하는가.

누가 우리의 뒷덜미를 낚아 채는 것일까.

가로수도 풀꽃도 다 뽑아버리고 무엇을 보러 누굴 만나러 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전 국토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파괴되고 획일화되고 있다.

속도와 대량수송만을 생각하는 개발로 자연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다.

그 속에 담겨 사는 우리의 삶도 빠르게 삭막해지고 있다.

강을 따라 구불거리던 옛 길을 돈들여 부수고 나무를 뽑아버리고 더 크게
더 완고하게 더 새롭게 만드는 개발 대신, 있던 걸 그대로 놔두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훨씬 가치 있는 것일 경우가 많다.

삭막한 길을 빠르게 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길을 천천히 가고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