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순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jisoon@snu.ac.kr >

"경쟁이란 조금만 바람이 세게 불어도 죽어버리는 연약한 꽃이 아니라 밟고
밟아도 되살아나는 잡초와 같아 여간해서는 경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 조지 스티글러의 ''고삐 풀린 경제학자의 회고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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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독과점에 대해서 염려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트러스트금지법을
제정한 1890년 전후부터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경제학자는 물론 일반인들은 기업이란 둘만 모여도
죽기살기로 경쟁하게 마련이며 독점은 오로지 예외적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산업화의 진전과 더불어 거대기업들이 출현하고 그들이
혼자서 또는 담합해 군소 업체를 몰아낸 다음 시장을 좌우하는 일이 생겨
독과점의 폐해를 지탄하는 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경쟁보다는 독과점이 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특히 30년대초 대공황을 겪으면서 거대기업의 시장지배행위가 경제파탄을
가져온 중요한 요인이라는 인식이 팽배함에 따라 독과점 규제에 대한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50년대 이후에는 전력 통신 철도 등 규모의 경제가 있는 산업에서의 자연
독점력이 문제가 됐다.

독과점금지법 혹은 공정거래법 형태로 거대기업의 영업활동을 규제하는
관행이 일반화된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80년대 이후 규제완화와 자율화 그리고 세계경제의
통합화 물결을 타고 독과점의 문제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으로 급속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독과점에 대한 인식은 1백년에 걸쳐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 독과점 사업자의 횡포가 만연되어 있으니 이를
법으로 금지하거나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가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독과점의 폐해란 매우 미미하며 기술혁신이란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독점력을 갖는 것이 경제의 장기적 성과를 더 크게 하는 일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어왔다.

독과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어 놓은 데 있어 가장 큰 공헌을 한 경제
학자는 슘페터와 스티글러다.

특히 스티글러는 독과점 사업자로 인식되는 소위 시장 지배적 사업자들의
경영 성과가 가격 생산량 이윤율 등에 걸쳐 경쟁산업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음을 여러 산업에 대해 입증했다.

처음 이런 결과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사람들도 초기의 연구결과를
지지하는 새로운 증거들이 계속 쌓이게 되자 이제는 독과점의 폐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리 크지 않으며 오히려 독과점을 규제하는 데서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인식을 갖게끔 되었다.

스티글러에 따르면 한 산업에 두 기업만 있어도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진다.

설령 그 산업에 한 기업만 있는 경우에라도 다른 산업에 속한 기업과
간접적으로라도 경쟁하지 않는 기업은 전무하므로 기업이 독과점 이윤을 오랫
동안 향유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기업간의 담합행위도 그 속성상 쉽게 와해되며 실제로 아주 오래 지속되는
담합은 찾아보기 어려움을 입증했다.

여기에서 스티글러가 중시하는 것은 유효 경쟁과 잠재적 경쟁이라는 두가지
개념이다.

유효 경쟁이란 예를 들어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철도사업이 겉으로는
독점사업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고속버스 승용차 항공기 등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는 경쟁사업자라는 것이며 잠재적 경쟁이란 어떤 산업에서 독점사업자
가 큰 이윤을 얻고 있다면 멀지않아 그것과 경쟁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사업자
가 출현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스티글러는 당시의 경제학자들이나 일반인에게 보편화되어 있던 관점
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증적인 탐구를 계속해 새로운 증거를
쌓아 나감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정반대로 바꾸어 놓는 데 성공했다.

독과점의 폐해가 매우 큰 것을 강조해 이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찬성하는
것이 대세인 한국의 나라 현실에서 이단자라는 지탄을 감수하면서도 실상을
조사해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연구 결과를 낼만큼 용기있는 경제학자가 과연
몇명이나 될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