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공감하는 일본인들의 덕목이
한가지 있다.

바로 친절이다.

도쿄에 갈 때를 예로 들어 보자.

나리타공항 입국심사대의 딱딱한 분위기를 지나 대합실로 들어서면 일본인들
의 몸에 밴 친절과 미소가 눈에 들어온다.

도쿄시내로 들어가는 전철과 리무진버스의 티켓카운터에도 밝은 목소리와
웃음이 넘쳐난다.

초행길 여행자도 기죽을 걱정이 없다.

서툰 일본어로 무엇을 물어도 괜찮다.

십중팔구 "하이"(네)라는 답과 깍듯한 인사가 돌아온다.

거리 구경을 나가도, 쇼핑을 할 때도 별로 불안할게 없다.

옷깃만 스쳐도 대개 상대방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온다.

물건을 파는 장소에는 가격표가 정확히 붙어 있다.

돈을 지불하면 예외없이 "얼마를 받았습니다"는 응답이 녹음된 말처럼
점원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영수증과 거스름 돈도 한치의 오차가 없다.

패전의 잿더미에서 경제강국을 일궈낸 일본을 세계는 일본주식회사로
불렀다.

일본주식회사를 떠받친 일본인들도 자연 "세계의 장사꾼"으로 불렸다.

하지만 세계가 알아주는 장사꾼답게 일본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상인도가
따라 다녔다.

일본에서도 최고의 장사꾼은 오사카상인들이다.

이들은 후배상인에게 "장사는 즐겁게 하라"고 주문했다.

"장사는 웃음"이라는 말도 이같은 가르침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오사카상인들은 신용을 잃어버리는 것을 "살아 있으면서 하는 할복행위"라며
수치로 여겼다.

일본의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신선도가 생명인 식품을 판매할 때 나중에
들어온 좋은 것 일수록 진열대의 앞에 놓는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일본인들의 미소와 친절의 뿌리를 캐고 들어가면 이처럼 투철한 상인정신과
절제된 행동윤리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수 있다.

세계의 장사꾼을 들먹인 것은 일본인의 상인기질을 칭찬하기 위함이 아니다.

앞으로 이틀후인 28일부터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라는 잔치가 시작된다.

일본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손님맞이 행사다.

목적은 분명하다.

우선 일본관광객들이 보다 많이 한국을 찾고 쇼핑을 즐기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일본인들도 우리의 문화유산과 전통에
눈뜨도록 하자는 뜻도 담겨 있다.

행사 주체인 관광공사는 관광한국의 이미지를 일신할수 있는 기회로 보고
준비에 만전을 기해 왔다.

백화점,호텔,면세점 등의 수많은 업체와 점포들도 소홀함이 없도록 정성을
쏟았다고 들린다.

반가운 소식이고 행사가 성공리에 끝나길 기대해야 마땅하다.

한국을 찾을 6만8천여명의 일본인들이 관광수입도 올려주고 좋은 인상을
안고 돌아간다면 더없이 기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절약과 절제 분위기 속에서 커온 국민들이다.

호주머니 사정이 윤택해도 불필요한 것은 수박 한조각, 생선 한토막 함부로
사지 않는 합리적 구매습관이 몸에 배있다.

흐트러짐 없는 질서의식도 함께 갖췄다.

코리아 그랜드 세일은 이러한 손님들을 대상으로 치러진다.

한국관광의 고질병으로 지목돼온 바가지요금, 불친절, 위생문제 등이 바로
잡히지 않은채 다시 노출된다면 행사는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하게 된다.

자존심은 지키되 찾아온 손님은 예의와 정성을 다해 맞아야 한다.

외화수입 올리기에만 열중해 왜곡된 인상을 주어서도 안된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3년 앞두고 치러지는 이번 행사의 의미는 그래서
또 다른 무게를 갖는다.

월드컵을 함께 열 이웃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성숙된 모습을 보여
줄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일본 총리부는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해 일본을 국빈방문한 것을
계기로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대폭 향상됐다고 발표했다.

한국을 보는 일본인들의 시각이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음을 알리는
청신호다.

이제 한국의 감춰진 매력과 저력을 정확히 알릴수 있는 행사는 눈앞에
다가 왔다.

하지만 성패의 열쇠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행사의 성공여부는 손님을 맞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정신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자.

< 양승득 유통부장 yangs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