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이 "포스트(post) 빅딜"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1년여 가까이 매달려온 빅딜이 27일 정.재계간담회를 통해 사실상 매듭됐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채근하고 있지만 해당 회사들이 챙겨야할 절차를 빼곤
"할 일"은 없어진 셈이다.

모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그룹 상층부가 "빅딜"에 끌려다니
느라 주요한 의사결정을 미뤄온 게 사실"이라며 "이제부터는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자체 구조조정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조정본부도 이제까지는 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협상 파트너와의
네고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각 그룹의 사업구조개편 지도는 이제부터
정밀하게 짜여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 그룹이 새 판을 짜고 있는 기본 목표는 주력업체의 집중 육성.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순응해 계열사를 줄이는 동시에 남는 계열사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업체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미 방향은 정해졌다.

최근 대우와 현대가 수정계획까지 발표하면서 "팔릴 회사, 살릴 회사"는
분류가 끝났다.

"주력업체를 어떻게 육성할 것이냐"가 포스트 빅딜의 화두인 셈이다.

대부분 그룹들은 그 방법을 "몰아주기"에서 찾고 있다.

합병, 분사, 청산 등 정리작업을 통해 부채를 최소화한다.

매각과 합작을 통해 구해지는 외자 등 자금은 주력업체의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 투입한다.

이를 통해 투자여력이 확보되면 주력업체는 조심스레 유망 사업에 대한
투자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수십개의 계열사를 잃게 되는 대신 사업 및 재무구조, 맨파워, 영업력 등
각 부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큰 업체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그룹들은 인적자원 재평가하고 주력사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방안도 조심스레 추진하고 있다.

육성전략도 새로 짜고 있다.

국내 기업간의 안방 경쟁이라는 전제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개입않는 자율 구조조정이라고 해도 쉬운 아니다.

우선 정리대상 회사의 인력 문제가 그렇다.

이미 대우의 경우 조선사업부문 등에서 노사분규 위기를 맞고 있다.

현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아예 "고용보장"까지 약속했다.

노조원들뿐만 아니다.

불안하기는 최고경영자들도 마찬가지다.

정리대상 계열사 임직원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기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
자체 구조조정의 과제인 것이다.

합작, 매각 등을 통해 지분이나 사업을 얼마나 잘 팔 것인가도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이미 상당수 매각 계열사 이름까지 발표된 상태여서 우리 업체들은 협상
주도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여기다 정부가 매달 이행실적을 점검키로 하겠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정부 재촉에 밀려 헐값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외국업체들이 나오지
말란 보장이 없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제부터는 누가 제대로 전략을 짜서 빠른 속도로
구조조정을 매듭짓고 투자여력을 확보하느냐의 경쟁"이라며 "빅딜이라는
큰 부담을 던 만큼 각 기업간 구조조정 속도 경쟁이 오히려 치열해질 것"
이라고 말했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