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증시정책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시장에 맡겨놓자니 증시과열이 우려된다.

그렇다고 섣불리 개입할 수도 없다.

자칫 주가가 고꾸라질 경우엔 기업의 유상증자 등에 차질을 빚어 구조조정이
삐그덕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폭락사태가 이어지면 제2금융위기도 초래할 수 있다.

정부가 금리정책과 보유주식 처분계획 등에 대해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증시과열 우려''의 사인만 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규성 재정경제부장관은 지난 28일 증시정책과 관련해 "주식투자는 투자자
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론만 강조했다.

정부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9일 "각 그룹 계열사 증권사와 투신사들이 내놓는 주식형
펀드가 계열사간 내부지원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5월부터
시작되는 3차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펀드를 이용한 지원행위를 포함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또한 정부의 확실한 증시정책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주가상승 속도를 조절하려는 ''엄포용''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현재 증시개입을 위해 두가지 "무기"를 갖고 있다.

하나는 금리상향조정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보유물량 매각이다.

특히 금리정책의 경우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통화당국은 금리수준에 대해 확실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박철 한국은행 자금담당부총재보는 "주가와 실물경기 움직임 등을 종합감안
해 5월6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수준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통화당국내에서도 "주가및 실물경기의 과열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서라도 금리를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당분간 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 있는 상태다.

정부보유 주식매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한빛 조흥은행지분 11조원을 비롯 전체 상장사주식의 17.3%를 소유
하고 있다.

증안기금에서도 1조8천억원의 물량을 갖고 있다.

정부는 증시의 과열양상을 가라앉히기위해 지분매각 가능성을 흘렸지만
내부적으론 아직 어떤 계획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한빛은행과 조흥은행 지분의 경우 매각방침이 흘러나오고 있으나 금융계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증시정책을 확실히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경제정책운용에 대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처럼 주가를 방치할 경우 실물과 괴리된 증시활황이 급격한 파국을
몰고올 가능성이 염려된다.

그렇다고 주가열기를 급랭시키자니 기업구조조정등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한다.

정부는 증시활황을 통해 기업들로 하여금 유상증자를 실시, 부채비율을
축소토록 유도해왔다.

이 결과 올들어 지금까지 기업들은 8조여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올 연말까지는 5대그룹에서만 30조원의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만일 증시가 붕락할 경우 기업구조조정계획에도 차질이 생길게 뻔하다.

실제로 이날 정책당국자의 증시관련 발언이 주가 폭락으로 이어진데 대해
경제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증시활황을 통해 경제운용을 쉽게 하려다가
주가의 폭발양상으로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며 "정부가 방향을 확실히 설정
해야만 실물경기나 증시도 제 궤도를 찾을수 있다"고 지적했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김성택 기자 idnt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