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과 관련된 조크 가운데 이러한 것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한사람이 삽 한자루를 갖고 구덩이를 파는데 10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10명이 삽 한자루씩을 갖고 동시에 작업을 한다면 똑같은 구덩이를
파는데 며칠이 걸릴까요"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든 학생은 수학자의 아들이었다.

"하루입니다"

선생님은 답을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물었다.

"정답이 맞습니까"

그러자 한 학생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 사람들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요"

다름아닌 경제학자의 아들이었다.

물론 이 조크는 경제학자들이 여러가지 전제와 가정을 내세워 허튼 소리를
잘하는 사람들로 묘사한 것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아들이 제기한 이의는 과연 허튼 소리에 불과한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경제현상이란 수학공식처럼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여건변화에 따라 그 답은 여러가지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최근들어 우리 경제의 진행상황과 관련해 논란이 분분하다.

경제지표는 호전된다는데 과연 경기회복은 이뤄지고 있는가.

주가는 이렇게 급히 올라도 괜찮은 것인가.

실업자는 늘어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물가걱정은 당분간 접어두어도 되는가.

수출이 어렵다는데 국제수지는 적자로 돌아서는게 아닌가...

걱정거리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초미의 관심사는 시중에 돈이 넘쳐 흐른다는 사실이다.

주식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는 돈의 규모를 보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주식매수 대기자금이라 할수 있는 고객예탁금은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
하면서 8조5천억원을 넘어섰다.

코스닥(KOSDAQ)시장에서 3개사의 공모주를 청약하는데 1조원이 넘는 청약
증거금이 몰렸다.

증거금률이 10~20%였던 점을 감안하면 주식을 사는데 10조원정도는 당장
동원할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주식시장만 돈 풍년이 든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은행빚을 갚겠다고 하는데 은행들이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우리 은행 돈은 계속 쓰고, 다른 은행에서 빌려 쓴 돈을 갚으라"고 종용
한다고 하니 세상이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통화증발"이니 "과잉유동성"이니 하는 말은 찾아보기 힘들다.

M2(총통화)다, M3(총유동성)다 하는 통화관리지표의 증가율조차 들어본지
오래다.

큰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3월말의 총통화증가율은 33.6%였다.

과거의 개념으로 보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 아닐수 없다.

예전 같았으면 경제학자들은 물론이고 정책당국도 벌써 통화를 흡수해야
한다고 야단났을 법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별말이 없는 것은 그동안의 경기침체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돈을 풀어서라도 내수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었고, 지금도
유효한 진단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앞으로다.

돈 풍년의 가장 큰 요인은 외자유입이다.

올들어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순유입액만도 30억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기업들의 외자유치도 크게 늘어났다.

약간의 조정국면은 있겠지만 주식시장의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증시가 돈잔치로 끝나서는 안된다.

증시로 몰려든 돈이 산업자금으로 전환돼 설비투자등에 활용되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확대와 고용증가로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최근들어 주식시장에 돈이 몰리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인 저금리도 궁극적인
목표는 다를바 없다.

과연 그같은 선순환이 이뤄질지는 아직 장담하기 이르다.

경기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무작정 좋아할 일만은 못된다.

이것 저것 걸리는 일들이 많다.

소비가 늘면 수입이 확대돼 국제수지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외자가 계속 쏟아져 들어오면 원화가 실제가치 이상으로 과대평가될 소지도
없지 않다.

외화유입 규모가 크다는 것은 갑작스런 철수때 경제에 주는 충격 또한 심각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돈 풍년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통화관리 장부에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한번쯤 들여다 볼때가 된 것같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