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 (기고) 일방적 고통전가 부당 .. 박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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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상 < 한국노총 위원장 >
오늘로 노동절 1백10주년을 맞는다.
주지하다시피 노동절은 19세기 산업사회의 여명기에 미국 노동자들이
비인간적 노동착취와 장시간 노동의 굴레를 깨기 위해 항거의 깃발을 올린
것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그 이후 전세계 노동자들이 매년 이날을 맞아 각종 기념식과 행사를
거행함으로써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오고 있다.
노동절의 기본정신은 자본주의사회의 폐단인 노동의 소외와 비인간화를
거부하고 노동의 인간화를 통해 근로 대중의 인격화를 도모하는데 있다.
따라서 노동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그 정신을 이어받는 것은 노동자의
인간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녕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공존을 모색하는 길이다.
노동절 정신의 근본은 영원하지만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양상은 시대상황과
역사발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19세기에는 1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사용자의 비인간적 대우를
철폐하는 것이 노동절이 갖는 의미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는 임금과 복지의 개선을 통한 노동기본권과 삶의 질
향상이 노동절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우리가 실현해야할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 개개인의 완전한 창의성 실현과 외부의 강권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사회는 이런 역사발전과 시대요구에 충실하게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이런저런 잔업을 포함해 10시간 이상을 작업장에서
보내고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휴식도 충분히 취하지 못하고 있고 문화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임금과 복지혜택 등 노동조건이 너무 열악하다.
무엇보다도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노동의 신성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같은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세기에도 마땅한 해법은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하면 19세기에 발생한 노동문제가 한세기를 지나 또 한세기를
맞이하는 현실에서도 아무런 개선없이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절은 노동자의 축제일이면서도 늘상 자본 및 권력과 일정한 긴장관계
속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격렬한 투쟁을 동반하기도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조성되고 있는 노사관계 및 노정관계는 실로 걱정스러운
측면이 많다.
고통분담과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진행되는 구조조정이 공정성과 절차상
타당한지 살펴볼 일이다.
많은 국민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말한 "전체가 살기 위해 30%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유독 정부와 정치권 및 재벌들에게는 통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작 고통을 감내해야할 당사자들에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가시키고 있다.
힘없는 사람만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이 국민들의 생각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한 구조조정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런 부당성에 항의하고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고자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국가 공권력의 압박과 고사작전은 문제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갈등만 빚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다시 맞는 노동절을 통해 우리는 노동문제야말로
새로운 세기에 사회 각 세력 전체가 관심을 갖고 함께 해결해야할 사안이며,
상호협력과 갈등해소를 통해 공존 공영을 모색해야할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일자 ).
오늘로 노동절 1백10주년을 맞는다.
주지하다시피 노동절은 19세기 산업사회의 여명기에 미국 노동자들이
비인간적 노동착취와 장시간 노동의 굴레를 깨기 위해 항거의 깃발을 올린
것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그 이후 전세계 노동자들이 매년 이날을 맞아 각종 기념식과 행사를
거행함으로써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오고 있다.
노동절의 기본정신은 자본주의사회의 폐단인 노동의 소외와 비인간화를
거부하고 노동의 인간화를 통해 근로 대중의 인격화를 도모하는데 있다.
따라서 노동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그 정신을 이어받는 것은 노동자의
인간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녕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공존을 모색하는 길이다.
노동절 정신의 근본은 영원하지만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양상은 시대상황과
역사발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19세기에는 1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사용자의 비인간적 대우를
철폐하는 것이 노동절이 갖는 의미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는 임금과 복지의 개선을 통한 노동기본권과 삶의 질
향상이 노동절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우리가 실현해야할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 개개인의 완전한 창의성 실현과 외부의 강권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사회는 이런 역사발전과 시대요구에 충실하게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이런저런 잔업을 포함해 10시간 이상을 작업장에서
보내고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휴식도 충분히 취하지 못하고 있고 문화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임금과 복지혜택 등 노동조건이 너무 열악하다.
무엇보다도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노동의 신성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같은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세기에도 마땅한 해법은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하면 19세기에 발생한 노동문제가 한세기를 지나 또 한세기를
맞이하는 현실에서도 아무런 개선없이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절은 노동자의 축제일이면서도 늘상 자본 및 권력과 일정한 긴장관계
속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격렬한 투쟁을 동반하기도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조성되고 있는 노사관계 및 노정관계는 실로 걱정스러운
측면이 많다.
고통분담과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진행되는 구조조정이 공정성과 절차상
타당한지 살펴볼 일이다.
많은 국민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말한 "전체가 살기 위해 30%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유독 정부와 정치권 및 재벌들에게는 통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작 고통을 감내해야할 당사자들에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가시키고 있다.
힘없는 사람만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이 국민들의 생각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한 구조조정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런 부당성에 항의하고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고자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국가 공권력의 압박과 고사작전은 문제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갈등만 빚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다시 맞는 노동절을 통해 우리는 노동문제야말로
새로운 세기에 사회 각 세력 전체가 관심을 갖고 함께 해결해야할 사안이며,
상호협력과 갈등해소를 통해 공존 공영을 모색해야할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