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교과서 경제학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자 월스트리트저널 경제면 톱기사의 머릿글이다.

올 1/4분기 중 미국의 고용비용지수가 0.4% 증가하는데 그쳤다는 노동부
발표에 대한 코멘트였다.

실업률이 29년만의 최저 수준(4.2%)으로까지 떨어졌는데도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은 거의 제자리 걸음을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실업률이 하락하면 임금 상승률이 높아진다"(필립스
커브)는 게 정답으로 돼있다.

노동의 수요-공급이라는 원리에 비춰봐도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이 "상식"이
요즘 미국에서 부정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같은 기사를 보도하면서 미국 경제학자들이 "수수께끼
(conundrum)"를 풀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수께끼는 이 뿐이 아니다.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실업률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임금이
오르고, 그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 상승(cost-push)으로 인플레가 나타난다"
고 돼 있다.

경제학자들은 몇해 전까지만 해도 "인플레를 동반하지 않는 실업률 하한선
을 5.5%로 정의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실업률이 4%대 초반으로 내려앉은지 2년이 넘도록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대에 머물러 있다.

경제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현상은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1일 발표된 1/4분기중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4.5%)도 그렇다.

성장률이 4%를 넘기 힘들 것이라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등의 전망이
또다시 웃음거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기 호황이 9년째에 접어든 만큼 경기 순환이론으로 볼 때 "연착륙"
을 해야 한다는게 주류 경제학자들의 분석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진단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뉴욕 연준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세계 경제 위기가 한창 고조됐던 작년
3/4분기때 연준리는 미국 경제가 드디어 성장 둔화에 빠질 것으로 예견
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4/4분기중 6.1%의 고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
이후 "전망치를 내놓는 자체가 두려워졌다"는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10년 가까이 천정부지의 상승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증시도 전문가들을
좌불안석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사상최초로 1만선을 돌파한 다우지수는 "이제 조정국면을
거칠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상을 또다시 무색케 하며 1만1천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존 경제학의 지식으로는 풀 수 없는 미국 경제의 승승장구에 대해 지난해
일부 학자들은 "신경제(New Economy)"라는 이름을 명명했었다.

말 그대로 "구 경제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뜻에서였다.

이에 대해 MIT의 폴 크루그먼 등 주류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구가하고
있는 기현상은 유가 등 국제 원자재가격 급락에 따른 일시적 외생 변수
덕분일 뿐"이라며 "신경제"설을 일축했었다.

연준리 등 미국 정책 당국도 크루그먼 교수의 지적에 보조를 맞췄다.

그러나 계속되는 "이변"의 연속은 더 이상 "신경제"의 도래를 부인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연준리는 최근의 금융시장위원회(FOMC)에서 신경제의 존재를 인정하고
앞으로는 이에 맞춰 금융 통화정책을 내놓기로 했다.

경제학 교과서를 완전히 새로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는 "신경제"의
원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그 중에서도 경제의 글로벌화,정부 규제의 거의 전면적 철폐, 인터넷 등
첨단 정보화 기술(IT)의 출현에 따른 획기적 생산성 향상 등이 유력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온통 수수께끼 속에서 헷갈려 있는 경제학자들이지만 이구동성으로
동의를 표시하는 것이 한가지 있다.

조만간 세계 전체가 미국을 진원지로 하는 "신경제 혁명"의 바람에 동승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