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상정책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30일 슈퍼301조에 따른 교역상대국의
"불공정 행위"들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전 같으면 이 행위들은 모두 미국과 해당국간 1대1의 쌍무 협상거리였다.

무역마찰의 해결무대를 쌍무체제에서 다자간 체제로 바꾼 것이다.

이는 미국 통상정책의 기조 변화를 예고하는 대사건이다.

당초 지난 2월 슈퍼301조가 부활됐을 때는 미국이 쌍무협상 중심의 통상
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쌍무협상에서 미정부가 마음대로 협상을 끌고 가면서 한층 거센 대외시장
개방 압력을 가할 것으로 우려됐다.

그러나 미국이 예상외로 무역문제를 다자간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미국의
일방적인 판단과 결정에 대한 공포가 크게 줄어들게 됐다.

다자간 체제에서는 객관성과 합리성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앞으로는 상대국 무역관행을 자국기준에서 자의적으로 판정
하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통상분쟁 해결방식을 바꾼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무엇보다 오는 11월에 시작될 새로운 국제무역협상의 분위기를 북돋워야
한다.

세게무역기구(WTO)의 뉴라운드 협상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각별하다.

이 협상을 통해 21세기 국제무역의 기준틀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하나라도 더 많은 의제를 협상에 올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이를 위해선 미국이 WTO규정을 준수하고 WTO체제안에서 통상정책을 수행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 5개국 7건의 "불공정한" 행위를 슈퍼301조가 아닌 WTO에
맡긴 것이다.

통상마찰건을 WTO무대로 가져가도 불리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정책변화의 주요인중 하나다.

그동안 미국은 유럽연합(EU)과의 바나나및 쇠고기 무역마찰등 굵직한
통상분쟁을 WTO에 맡겨 모두 승리했다.

시일이 오래 걸리는게 흠이나 WTO무대에서도 얼마든지 이길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쌍무협상 중심의 통상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도 정책수정에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쌍무협상을 통해 "힘의 논리"로 상대국을 일방적으로 몰아부친다는
비난에 시달려 왔다.

미국의 이같은 정책전환은 3일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다시한번 확인될
전망이다.

이 자리에서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오부치 일본총리에게 뉴라운드의 순조로운
출발을 위해 협력해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대가로 철강 보험 분야에 대해 보복을 위협하지 않고 일본측의 자율적인
개선을 촉구할 예정이다.

일본의 조속한 경기회복책을 요구하겠지만 과거와 같은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는 하지 않을 것 같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