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5월의 푸르른 아침 ..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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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나무들이 잎을 피워낸다.
얼마전에 화려하게 흰 꽃을 맘껏 피워 올렸던 벚나무 살구나무 산복숭아
나무도 잎을 피우고 봄 내내 꿈쩍 않고 까맣게 서 있던 감나무도 빛나는
잎을 피워낸다.
오동나무 꽃 피면 초여름인데 오동나무도 잎보다 먼저 꽃등을 봄바람 속에
달았다.
잎이 늦게 피는 자귀나무에서도 새순이 돋아난다.
아직 대추나무만 죽은 나무처럼 까맣게 잠들어 있다.
내가 사는 이 곳 산은, 나무들은, 숲은, 강변은 지금 더 할 수 없는 아름
다운 "혁명"중이다.
아침 햇살과 저문 햇살 속에 피어나는 감나무 이파리들은 얼마나 빛나는
몸으로 자기 몸을 가득 채워 가는가.
마을 입구에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또 그 얼마나 작고 빛나는, 수많은 이파
리들을 다 피워 우람한 몸체를 세상에 드러내는가.
아, 저 새 잎들, 저 푸르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저 수많은 나무이파리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저렇게 피어나며 서로
부딪쳐도 상처 입지 않고 바람 속에서 서로 반짝이며 부딪치는가.
잎을 다 피워내며 아침 햇살을 받는 나무들은 성스러워 보인다.
까만 아침 산그늘 속 아침 햇살에 황금 빛으로 드러나는 키 큰 포플러나무는
그 얼마나 키가 크고 위대해 보이는가.
먼산에 참나무잎은 또 얼마나 지는 햇살에 황금빛이며, 은사시 나뭇잎은
또 얼마나 뽀얗게 산 한쪽을 물들이는가.
산은 마치 화가가 캔버스에 처음 유화 연두색 물감을 척척 바르는 것 같이
푸르러진다.
나무들이 새 잎을 피워내는 일은 새로 역사를 쓰는 것 같다.
나무들이 새 잎을 피워내는 일은 깨끗한 새 나라를 세워 새 정부를 다듬는
일 같고, 새로 시를 한편 쓰는 일 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지금 날마다 나무들 곁을 지나며 나무들에 경배하고 감동하고 감탄
한다.
이렇게 잎을 피워내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서면, 나는 한 들판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시는 나이 드신 농부를 바라보는 것 만큼이나 세상이 든든
해진다.
5월의 산에서 나무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정오의 햇살이 찾아 든 5월의 숲에 나는 든다.
햇살이 찾아 든 숲은 오, 눈부셔라.
바람이 불면 나무와 숲은 커다란 산과 함께 움직인다.
새로 잎이 피는 나무들이 나를 에워싼다.
새로 피어나는 작은 이파리들은 그리운 세상에 눈을 뜨며 놀라고, 그 반짝
이는 눈빛으로 나는 놀란다.
반가워라 내게 손을 흔드는 새 이파리들아.
하루종일 이파리들을 따라다니며, 이파리 위를 걸어다니는 초록의 어린
해야.
이따금씩 지나는 구름아, 비야, 안개야.
온몸을 흔들어 깨우는 바람아.
해가 지면 내려오는 산 그림자야.
지금 숲에서 나무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작은 새들은 소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를 내려 앉는다.
다람쥐는 부산하게 나무들을 타고 오르내린다.
어디서 낮 소쩍새가 우는구나.
오, 저 층층나무는 벌써 하얀 꽃을 층층이 피우는구나.
저 오리나무 밑에 연보라색 아기 붓꽃은 올해 늦게 피어나고 고사리도 어제
아침보다 쑥 자랐구나.
어, 가시가 다닥다닥 붙은 두릅나무 순도 돋아나고 뿔나무 새순도 활짝
펴진다.
너는 둥굴레 새싹 아니냐.
얼마나 천천히 땅을 밀고 솟았으면 그렇게나 파랗게 세상에 물들었느냐.
할미꽃 흰제비꽃도 많이도 피어났구나.
저기 저 논두렁에 붉은 자운영 꽃아, 쑥부쟁이 꽃아, 흐르는 강가에 피어나
저문 강물에 어리는 개구리자리 꽃아.
나무들이 춤을 추고, 산이 일어서고, 강물은 달리고, 그 강 그 산 아래
작은 운동장에 우리 아이들이 거침없이 뛰논다.
3학년에 막 올라간 인수가 오늘 아침에 "생명의 한 살이"라는 글을 써 왔다.
"배추 흰나비는/번데기에서/흰나비가 되고//개구리는/올챙이에서/개구리가
된다//나무 씨앗이/열매에서 퍼지면/떨어져 자라/나무가 된다"
그렇다.
생명의 한살이로 지금 아름다운 우리 산천은 "최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나무에서 피어난 작은 이파리들이 나무를 그려내고,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그리하여 5월의 푸르른 산은 우리 앞에 우뚝 솟는다.
우리들은 지금 이 산천의 아름다운 "혁명"앞에서 무엇을 쓰고, 무엇을
세우고,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마음에 그리고 있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5일자 ).
얼마전에 화려하게 흰 꽃을 맘껏 피워 올렸던 벚나무 살구나무 산복숭아
나무도 잎을 피우고 봄 내내 꿈쩍 않고 까맣게 서 있던 감나무도 빛나는
잎을 피워낸다.
오동나무 꽃 피면 초여름인데 오동나무도 잎보다 먼저 꽃등을 봄바람 속에
달았다.
잎이 늦게 피는 자귀나무에서도 새순이 돋아난다.
아직 대추나무만 죽은 나무처럼 까맣게 잠들어 있다.
내가 사는 이 곳 산은, 나무들은, 숲은, 강변은 지금 더 할 수 없는 아름
다운 "혁명"중이다.
아침 햇살과 저문 햇살 속에 피어나는 감나무 이파리들은 얼마나 빛나는
몸으로 자기 몸을 가득 채워 가는가.
마을 입구에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또 그 얼마나 작고 빛나는, 수많은 이파
리들을 다 피워 우람한 몸체를 세상에 드러내는가.
아, 저 새 잎들, 저 푸르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저 수많은 나무이파리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저렇게 피어나며 서로
부딪쳐도 상처 입지 않고 바람 속에서 서로 반짝이며 부딪치는가.
잎을 다 피워내며 아침 햇살을 받는 나무들은 성스러워 보인다.
까만 아침 산그늘 속 아침 햇살에 황금 빛으로 드러나는 키 큰 포플러나무는
그 얼마나 키가 크고 위대해 보이는가.
먼산에 참나무잎은 또 얼마나 지는 햇살에 황금빛이며, 은사시 나뭇잎은
또 얼마나 뽀얗게 산 한쪽을 물들이는가.
산은 마치 화가가 캔버스에 처음 유화 연두색 물감을 척척 바르는 것 같이
푸르러진다.
나무들이 새 잎을 피워내는 일은 새로 역사를 쓰는 것 같다.
나무들이 새 잎을 피워내는 일은 깨끗한 새 나라를 세워 새 정부를 다듬는
일 같고, 새로 시를 한편 쓰는 일 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지금 날마다 나무들 곁을 지나며 나무들에 경배하고 감동하고 감탄
한다.
이렇게 잎을 피워내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서면, 나는 한 들판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시는 나이 드신 농부를 바라보는 것 만큼이나 세상이 든든
해진다.
5월의 산에서 나무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정오의 햇살이 찾아 든 5월의 숲에 나는 든다.
햇살이 찾아 든 숲은 오, 눈부셔라.
바람이 불면 나무와 숲은 커다란 산과 함께 움직인다.
새로 잎이 피는 나무들이 나를 에워싼다.
새로 피어나는 작은 이파리들은 그리운 세상에 눈을 뜨며 놀라고, 그 반짝
이는 눈빛으로 나는 놀란다.
반가워라 내게 손을 흔드는 새 이파리들아.
하루종일 이파리들을 따라다니며, 이파리 위를 걸어다니는 초록의 어린
해야.
이따금씩 지나는 구름아, 비야, 안개야.
온몸을 흔들어 깨우는 바람아.
해가 지면 내려오는 산 그림자야.
지금 숲에서 나무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작은 새들은 소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를 내려 앉는다.
다람쥐는 부산하게 나무들을 타고 오르내린다.
어디서 낮 소쩍새가 우는구나.
오, 저 층층나무는 벌써 하얀 꽃을 층층이 피우는구나.
저 오리나무 밑에 연보라색 아기 붓꽃은 올해 늦게 피어나고 고사리도 어제
아침보다 쑥 자랐구나.
어, 가시가 다닥다닥 붙은 두릅나무 순도 돋아나고 뿔나무 새순도 활짝
펴진다.
너는 둥굴레 새싹 아니냐.
얼마나 천천히 땅을 밀고 솟았으면 그렇게나 파랗게 세상에 물들었느냐.
할미꽃 흰제비꽃도 많이도 피어났구나.
저기 저 논두렁에 붉은 자운영 꽃아, 쑥부쟁이 꽃아, 흐르는 강가에 피어나
저문 강물에 어리는 개구리자리 꽃아.
나무들이 춤을 추고, 산이 일어서고, 강물은 달리고, 그 강 그 산 아래
작은 운동장에 우리 아이들이 거침없이 뛰논다.
3학년에 막 올라간 인수가 오늘 아침에 "생명의 한 살이"라는 글을 써 왔다.
"배추 흰나비는/번데기에서/흰나비가 되고//개구리는/올챙이에서/개구리가
된다//나무 씨앗이/열매에서 퍼지면/떨어져 자라/나무가 된다"
그렇다.
생명의 한살이로 지금 아름다운 우리 산천은 "최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나무에서 피어난 작은 이파리들이 나무를 그려내고,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그리하여 5월의 푸르른 산은 우리 앞에 우뚝 솟는다.
우리들은 지금 이 산천의 아름다운 "혁명"앞에서 무엇을 쓰고, 무엇을
세우고,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마음에 그리고 있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