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 탄생 100돌] '하이에크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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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의 활동무대는 넓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아 딱히 수제자로 꼽을 만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잇고 있는 후예는 세계 곳곳에 많다.
소위 하이에키안(Hayekian)으로 불리는 이들은 하나의 학파를 이룰 정도.
특히 미국 뉴욕대(NYU) 경제학과 교수들은 대부분 하이에키안.
하이에크가 지난 47년 창설한 몽 펠러린 학회에도 하이에크 옹호자들이
모여 있다.
자유주의 사상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유일한 국제학회로도
유명하다.
하이에크는 영면하기 전까지 이 학회의 명예회장을 맡았다.
한국 학자중에선 자유기업센터의 공병호 소장이 회원.
또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시카고 학파의 뿌리도 하이에크에게서 비롯된다.
미국에서 케인스의 개입주의적 거시경제학에 처음으로 이론적 비판을 가한
프리드먼은 하이에크가 지난 50~62년 시카고 대학 교수로 있을 때 강한
영향을 받았다.
시카고 학파는 그후 발전해 70년대 합리적 기대가설에 입각해 케인스
경제학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신고전학파"로 자리잡았다.
한국에도 하이에키안은 적지 않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를 비롯해 안재욱 경희대 교수, 박상수 제주대 교수,
전용덕 대구대 교수, 김영용 전남대 교수 등.
또 이진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하이에크 팬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전경련 부설 자유기업센터는 한국에서 하이에크 사상을 전파하는
본산이다.
공병호 소장, 김정호 박사 등이 모두 하이에크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다.
회의실 이름도 "하이에크 체임버"로 부를 정도.
자유기업센터에선 "치명적 자만"(신중섭 역) "자유헌정론 1,2"(김균 역)
"법.입법 그리고 자유 2,3"(민경국.서병훈 역) 등 하이에크의 저작들을
번역 출판하고 있다.
< 차병석 기자 chab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7일자 ).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아 딱히 수제자로 꼽을 만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잇고 있는 후예는 세계 곳곳에 많다.
소위 하이에키안(Hayekian)으로 불리는 이들은 하나의 학파를 이룰 정도.
특히 미국 뉴욕대(NYU) 경제학과 교수들은 대부분 하이에키안.
하이에크가 지난 47년 창설한 몽 펠러린 학회에도 하이에크 옹호자들이
모여 있다.
자유주의 사상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유일한 국제학회로도
유명하다.
하이에크는 영면하기 전까지 이 학회의 명예회장을 맡았다.
한국 학자중에선 자유기업센터의 공병호 소장이 회원.
또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시카고 학파의 뿌리도 하이에크에게서 비롯된다.
미국에서 케인스의 개입주의적 거시경제학에 처음으로 이론적 비판을 가한
프리드먼은 하이에크가 지난 50~62년 시카고 대학 교수로 있을 때 강한
영향을 받았다.
시카고 학파는 그후 발전해 70년대 합리적 기대가설에 입각해 케인스
경제학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신고전학파"로 자리잡았다.
한국에도 하이에키안은 적지 않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를 비롯해 안재욱 경희대 교수, 박상수 제주대 교수,
전용덕 대구대 교수, 김영용 전남대 교수 등.
또 이진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하이에크 팬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전경련 부설 자유기업센터는 한국에서 하이에크 사상을 전파하는
본산이다.
공병호 소장, 김정호 박사 등이 모두 하이에크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다.
회의실 이름도 "하이에크 체임버"로 부를 정도.
자유기업센터에선 "치명적 자만"(신중섭 역) "자유헌정론 1,2"(김균 역)
"법.입법 그리고 자유 2,3"(민경국.서병훈 역) 등 하이에크의 저작들을
번역 출판하고 있다.
< 차병석 기자 chab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