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연(34) 변호사.

그의 이미지는 강성이다.

공장 노동자, 민정당 연수원 점거농성, 구속...

대학(서울대 법학과)시절 경험만 봐도 그렇다.

지금도 그는 "운동권"이다.

물론 내용은 달라졌다.

요즘 그가 벌이는 것은 소액주주 운동.

지난 97년 제일은행 부실대출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
이 바로 그다.

이 소송은 한국 소액주주 운동에 불을 댕긴 기념적인 사건이다.

지난해에는 고려대 장하성 교수와 함께 삼성전자에서 13시간반동안 마라톤
주총을 연출해 스폿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올해 역시 삼성전자 주총에서 사외이사추천위원회 도입을 관철시키는 등
소액주주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뒀다.

재계 입장에서는 "저승사자"란 별명을 붙일만도 하다.

그러나 막상 김 변호사를 만나보면 이런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진다.

오히려 "유연한 사고를 가진 현실주의자"란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부드러운 인상에 조용한 말씨,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

김 변호사의 소액주주 운동에 넌덜머리가 났을 법한 삼성전자 관계자들
조차도 "정말 합리적인 사람"이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그는 대기업의 적이 아니다.

조력자가 되고 싶은게 그의 마음이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하자는 겁니다.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경영시스템이
합리적으로 바뀌면 기업들의 효율성도 높아질게 아닙니까"

소액주주 운동의 타깃 기업을 정하는데도 신중하다.

"삼성전자나 SK텔레콤보다 지배구조나 경영관행이 후진적인 기업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도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파급효과 때문이죠.
선도기업을 대상으로 해야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수 있으니까요. 부작용
도 고려됐습니다. 체력이 허약한 기업을 공격했다가 루머가 확산돼 기업
경영이 나빠진다면 큰 일이니까요"

김 변호사는 "기업들이 건전한 경영 시스템만 갖춘다면 자발적으로 나서서
투자자들에게 광고하고 다닐 용의도 있다"고 강조한다.

김 변호사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왼쪽 구석에 허름한 캐비넷이 하나 놓여
있다.

그 위에 두줄로 높이 쌓여있는 서류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은 삼성전자, 왼쪽은 제일은행 소송관련 서류다.

각각 몇 만페이지의 분량이다.

"저 서류를 샅샅이 읽어보고 가장 설득력 있는 말로 소장을 써야 했습니다.
보통 사건의 10배, 20배는 힘든 일이죠"

제일은행 소송에 김 변호사가 쏟아부은 시간만도 5백시간이 넘는다.

그러나 이런 일은 모두 돈 한푼 못받는 "자원봉사"다.

여기에 시간을 뺏겨 돈벌이 소송을 놓친 "기회비용"까지 계산하면 밑져도
한참 밑지는 장사다.

그만큼 이 운동에 대한 그의 열정이 뜨겁다는 얘기기도 하다.

그가 이런 희생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 날이 97년 7월24일이었다.

"제일은행 판결이 나던 오전 10시께 혼자 사무실에 있다가 승소소식을
들었습니다. 순간 꽉 막혔던게 뚫리는 기분이더군요"

그후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기업, 대학, 각종 토론회 등 수십군데서 강연요청이 쏟아졌다.

"당황스러웠습니다. 강연을 할 만큼 경제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는 열심히 다녔다.

소액주주 운동을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더 공부해야 했다.

결국 그에게는 지적자극이 됐다.

김 변호사는 지난달부터 회계학원에 다니고 있다.

돈이 돌아가는 매카니즘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필요에서다.

경제및 경영분야의 전문서적을 매달 1권이상 읽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그렇다고 소액주주운동의 전문가가 될 작정은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소액주주 운동은 필요없죠. 이 운동은 과도기용일
뿐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정책 전문가가 목표입니다. 법과 경제에 대한
지식, 그리고 현실감각을 접목시켜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소액주주 운동 변호사건, 경제정책 전문가건, 그의 지향점은 한가지다.

도전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보상받는 열린 사회.

이런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 노혜령 기자 hroh@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이익원 권영설 이심기(산업1부)
노혜령(산업2부) 김문권(사회1부) 육동인(사회2부)
윤성민(유통부) 김태철(증권부) 류성(정보통신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