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내린 뜰팡서/촉촉이 젖어서 자던 신발들이 좋다/모래와 발바닥과
강물이 간지럽다/(중략)/바람의 살/그 살결의 허릿매가 저리게 좋다"
("아흐레 민박집")

충북 옥천 출신의 늦깎이 시인 박흥식(43)씨.

그의 첫 시집 "아흐레 민박집"(창작과비평사)은 옥천이 낳은 한국시단의
거두 정지용의 시맥과 잇닿아 있다.

"우르릉 빗소리는 발목에 춥고"("한파"), "발자국을 짜륵짜륵 따라오던
저물녘 살얼음"("춘궁기")같은 표현은 지용이 생전에 "서정시에서 말 하나
밉게 놓이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엄격하면서도 공감각적인 이미지를 잘 형상화한 대목이다.

"불러 세우는 소리나 그림자 하나 없는/저만큼 산모롱을 자전거는 돌았다"
("사람이 보인다")에서도 전통시의 운율을 한차원 승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단련은 오랜 습작과정과 체험의 깊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사람이 아니었더라면/슬픔이나 기침, 가난이나 두려움이 아니고/
시린 저 하늘 끝 눈물겹게도 챙챙한 설움이었다면"("우리가 별이었다면")

그는 가난 속에서도 "정든 소가 되고 싶다"고 노래한다.

"많은 것이 떠나갔고 다시/바람속에 나 있을 것이므로/들판을 오롯이
버티다가/미운 소가 되고 싶다"("미움을 받든 소")고 기원한다.

그의 작품을 접한 시인 이시영씨는 "시 하나를 붙들고 가난과 지칠줄 모르는
외로움 속을 질주해온 그가 사십을 훌쩍 넘어 처음 펴낸 시집 앞에서 숨이
턱 막힌다"면서 "한편 한편이 너무나 아프고 슬프다"고 말했다.

그의 시가 오랜 세월 고독속에 스스로 유폐돼보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정서의 한 끝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92년 "자유문학"에 시 "소의 눈"등 4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