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네와 다테마에.

일본인들의 이중성을 말할 때 흔히 동원되는 표현이다.

혼네가 속으로 품고 있는 본심이라면 다테마에는 겉으로 드러내는 외교적
언사 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월가의 투자가들도 속과 다른 겉에 관한 한 일본인들 빰친다는 소리를
듣는다.

당장의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고객들의 입맛에 쏙 맞는 미사여구만 늘어
놓지만 뒤돌아서면 철저하게 자신의 이해를 좇아 행동한다.

한국 경제가 증시를 중심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부쩍 바빠진 월가의
한국 전문가들도 이런 점에서 요즘 눈여겨 볼 대상이다.

이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한국 추켜 세우기에 나서고 있다.

무역수지 금리 주가 환율 등 외환 위기 이전의 수준을 되찾은 일부 거시
지표들을 단골 재료로 삼아 한국이 제2의 기적을 일궈가고 있다는 식의
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칭찬의 때와 장소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다.

칭찬은 한국 정부와 기관들이 월가에서 개최하고 있는 각종 경제설명회에
동원될 때 뿐이다.

비공식적인 자리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 싶게 본심을 털어놓는다.

뉴욕의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지난 13일(현지 시간) 월가의 베테랑을 초청해
마련한 오찬 간담회는 이런 점에서 그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
였다.

한국의 금융기관과 학계 및 기업의 관계자 10여명 만이 참석한 가운데
연사로 초청된 리먼 브러더스사의 셔먼 루이스 부회장은 "이런 자리니까
하는 얘기지만..."으로 말문을 열고는 한국 경제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말만 무성한 채 제자리 걸음 중인 일부 대기업간의 빅딜과 구조조정 계획,
심상치 않은 노동계의 동향 등 한마디로 한국은 외환 위기를 초래했던 병인
들을 그대로 온존시키고 있다는 얘기였다.

최근 미국의 메트생명과 프랑스의 악사 등이 대한생명의 인수 경쟁에서
자진 철수키로 한 것은 충분한 기업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는
한국이 공약해 온 투명성 제고가 말 뿐이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혹평까지 이어졌다.

루이스 부회장은 언론계에서는 유일하게 이날 간담회에 초대된 기자에게
내용의 상당 부분을 오프 더 레코드 로 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비판적인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월가 주류의 속마음 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