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가 정말 피곤합니다"

어느 드라마 PD의 하소연이다.

방송사의 채널 이미지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드라마.

그만큼 중요한 장르이긴 하지만 제작 환경은 그에 못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PD들을 지치게 하는 첫번째 이유는 캐스팅의 어려움이다.

현재 방송3사의 드라마수는 시트콤을 포함해서 모두 26개.

반면 비중있는 배역을 맡길만한 인기 탤런트는 50여명 안팎에 불과하다.

준비중인 드라마들까지 감안하면 경쟁은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기 탤런트들이 영화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
캐스팅이 한층 어려워졌다.

KBS2 주말드라마 "유정"을 연출하고 있는 이응진 PD.

방송 시작일이 다가오는데도 여주인공 중 한명인 희주역을 찾지 못해 애를
태웠다.

희주로 결정됐던 김남주가 갑자기 출연 불가를 통보했기 때문.

결국 방송 5일을 앞두고 김윤진을 겨우 붙들었다.

SBS "토마토"도 마찬가지다.

장기홍 PD는 세라 역을 맡기로 했던 이혜영이 출연을 고사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김지영으로 교체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다급한 캐스팅은 드라마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충분한 준비가 없었던 김지영은 극 초반 어색한 연기때문에 PC통신에서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빠듯한 제작 일정은 PD를 더욱 힘들게 한다.

사전 제작이 자리 잡히지 않아 "당일치기"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속극을 끝낸 PD는 몸무게가 몇 kg씩 줄어들 정도다.

얕은 작가층, IMF 이후 줄어든 제작비 등도 PD들의 어깨를 누른다.

이런 점에서 올해들어 KBS 드라마제작국이 도입한 공동 작가제, 오디션을
통한 과감한 신인 발굴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일선 PD들의 다양한 의견과 작품기획을 수용하는 "드라마기획위원회"의
활동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KBS의 새로운 시도가 TV드라마 제작 환경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길
기대한다.

밤샘 작업에 시달리는 제작진뿐 아니라 수준높은 드라마를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현재의 제작 풍토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 박해영 기자 bon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