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중국의 전략서 중에 손자병법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의 손무가 쓴 이 책은 적을 이길 수 있는 36가지의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 맨마지막 전략은 적이 강해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 도망치라는
것이다.

"삼십육계, 주위상계(36가지 계략중 줄행랑이 으뜸)"가 바로 그것이다.

도망치는 것은 적을 이기기 위한 전략 중의 하나다.

힘이 약한데 적과 맞붙어 지리멸렬하기보다는 자존심을 구기더라도
후퇴했다가 힘을 키워 적을 물리치는게 현명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개구리는 멀리 뛰기 위해 몸을 움츠린다는 우리 속담과도 맥이 통한다.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에 대한 오폭 사건으로 촉발된 미국과 중국간의 갈등은
손자병법의 줄행랑 전략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중국이 최근 미국에 대한 태도를 일순간에 바꾼 것은 줄행랑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당해내지 못할 바에는 실리를 찾는 편이 낫다는 전략의 하나다.

나토가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을 오폭했을 당시 대학생과 시민들은 미국
대사관을 에워싼채 화염병을 던지면서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치안을 담당하는 중국공안(경찰)도 이를 묵인했다.

하지만 관제의 냄새를 물씬 풍기던 반미시위는 너무도 싱겁게 끝났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장쩌민 국가주석에게 전화로 사과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중국 당국으로서는 젊은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쳤던 천안문사태 10주기
(6월4일)를 앞둔 시점에서 반미시위가 자칫 민주화운동과 연결되는 것을
우려했음직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내세우는 명분이다.

사실은 미국을 상대로 더 이상의 갈등을 빚어봤자 득이 될게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듯하다.

강도높은 압박전략을 구사한다 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미국이라는 것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체면이 섰을 때 과감히 후퇴하는 것이 실리를 찾는 길이라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이다.

미국과 중국간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협상을
연내에 마무리하기 위해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중국은 물러서면서도 미국의 패권주의에는 반대한다는 얘기를 잊지
않았다.

언제든 꼭 반격할테니 두고보자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미래를 기약한
셈이다.

< 베이징=김영근 특파원 ked@mx.cei.gov.c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