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채권은행단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삼성자동차의 부채 일부를
떠안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자동차 투자실패의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투자가 실패하고 성공하고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투자란 그 대상에 따라 1년만에 결실을 맺을 수 있는게 있는가 하면 5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것도 있다.

자동차뿐 아니라 대형장치산업은 대개 초기 수년간은 이익을 내지 못하는게
보통인데 앞으로 이런식으로 책임을 묻겠다면 누가 대형 투자를 하려할
것인가.

둘째, 투자실패여부는 누가 판정하는가.

이론적으로는 시장이 판정하게 된다.

투자 실패한 기업의 주주들이 주식을 팔고 떠나면 주가가 떨어져 기업주는
손해를 보게 된다.

이것으로 만족못한 소액주주들이 최고경영자에게 손해배상을 하라고 소송을
하는 경우 경영책임여부를 법원이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판사의 판단이 경영자의 능력보다 우월한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 투자결정 당시 주주와 채권자, 감독당국은 뭘했는지 그들도 사재를
털어야 하는지도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셋째, 실정법상 그룹총수에 대해 무슨 근거로 재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정책당국은 이건희회장이 "사실상의 이사"로서 활동했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총수의 책임을 묻기위해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책임을 꼭 개인재산을 팔아서 져야 하느냐, 또 재산을 내놓는다면 얼마나
내놓아야 하는가.

관계당국자들은 "소액주주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법치국가에서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기준인가.

경영책임을 국민이 납득할 만큼 지라는 것은 여론재판이나 다름 없다.

경영책임여부를 여론에 물어보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넷째, 그룹총수의 경영책임은 이건희 회장에게 국한될 것인가.

이건희회장이 개인재산을 내놓으면 나머지 재벌총수들에게도 이러저러한
경영실패 사례를 들어 재산을 내놓으라고 요구할게 틀림없다고 본다.

이 경우 유한책임을 특징으로 하는 주식회사제도는 붕괴되며 기업관련법규
는 모두 고쳐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옛말에 "빈대잡자고 초간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일의 경중을 가리지 못하고 눈앞의 작은 이익을 좇다가 큰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남들은 21세기의 승부처를 찾아 온세계를 누빌 때 아직도 과거청산을
철저히 하겠다며 책임추궁문제로 날밤을 지새게 되면 언제 국가경쟁력을
키울 것인가.

유한수 <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