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원보증의 비극 ]

법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역기능이
있다.

이럴 때 또 다시 그 법의 이름으로 피해 당사자를 구제하자면 밑져야
본전뿐인 싸움에 봉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신원보증"으로 생겨나는 소송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케이스중 하나다.

아들이나 사위가 부모를 찾아와서 "취직을 위해서 신원보증인이 필요합니다"
라고 했을 때 이를 거절할 수 있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형제 간에도 꺼린다는 신원보증이지만 부모 자식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느 사위가 증권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그리고 장모는 흔쾌히 사위의 신원보증인이 되어 주었다.

알다시피 증권회사 직원은 부지런히 돈을 끌어 모아 증권을 사고 파는 것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유능한 증권회사 직원이 된다.

회사의 이익을 늘려줄 수 있고 고객에게도 이익을 보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고 파는 것이 모두 이익으로만 귀결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입사 초기에는 우수사원으로 표창까지 받았던 그는 손해를 보기 시작했다.

급기야 손을 대서는 안되는 계좌에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이른바 "임의 매매"라는 것을 하고만 것이다.

이것은 고객의 승낙도 없이 함부로 계좌의 돈을 꺼내 여기 저기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앞서면 되던 일도 틀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엄청난 액수의 손해를 보게 되었다.

당연히 이 사실이 드러났고 고객의 항의를 받자 회사에서는 쉬쉬하며
큰손이었던 그 고객의 손해액 전액을 물어주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사후처리. 당연히 이 직원과 신원보증인에게 소송이
들어왔다.

이름하여 "보증채무금등 청구소송".

"당신 사위가 물어줘야 할 손해액을 회사에서 대신 물어주어 손해를 봤으니
직원과 신원보증인인 당신이 함께 그 금액을 회사에 물어내시오"라는 청구인
셈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맡아 변론에 나서게 됐다.

패소가 당연히 예상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잘 찾아보면 솟아날 구멍은 항상 있는 법.

"신원보증법"은 직원이 업무상 잘못한 일이 있거나 성실하지 못한 업무
처리를 하여 신원보증인에게 책임이 생길 염려가 있는 때는 즉시 신원보증인
에게 알려서 신원보증계약을 끝낼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사위는 이전에도 한번 사고를 내서 손해를
물어준 적이 있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고는 그때의 손실을 만회하려다 더 큰 손해를 본 결과로
생긴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번 다퉈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례도 이와 유사한 사례에서 증권회사에도 직원을 제대로 지휘감독하지
못한 잘못과 신원보증인에게 이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보아
금액을 대폭 깎아 지급하도록 한 전례가 있었다.

이외에도 우리 신원보증법은 가능한 한 보증인의 책임을 줄여주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이것을 알아두면 유익할 것이다.

일단 특별히 기간을 정하지 않고 신원보증을 하게 되었다해도 원칙적으로
그 보증기간은 3년으로 제한된다.

아무리 그 보증기간을 길게 정해도 법적으로는 5년간만 유효하다고 본다.

또 직원의 담당업무나 근무지가 변경됨으로써 신원보증인의 책임이
무거워지거나 관리.감독이 힘들어질 때 회사는 즉시 신원보증인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야 한다.

통지를 받은 신원보증인은 보증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리고 직원의 잘못으로 신원보증인이 손해를 배상하게 되더라도 법원은
그 금액을 정하는데 주변 정황, 즉 회사에는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이
없는지, 신원보증인이 왜 보증을 서게 되었으며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
직원의 업무내용과 근무지 기타 신원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등의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적절한 감액을 유도하고 있다.

< 먼데이 머니 자문위원 sehoonoh@shinbiro.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