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 중앙대 교수 / 경제학 >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지금 우리경제는 반환점에 서 있다.

전반 코스는 보호주의나 저임금이라는 성장환경에서 성장제일주의 정책으로
밀어붙여 의식주의 기본수요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단시간에 해냈다.

앞으로 달려가야 할 후반 코스는 개방체제와 고임금이라는 성장환경에서
삶의 질을 선진화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밥과 옷이 아니라 환경 교육 의료
교통 노후보장 휴식공간 등 사회공공재이다.

밥과 옷은 생산만 증가하면 해결되는 것이지만 이들 사회공공재는 생산이
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오히려 악화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이러한 성장단계의 변화를 우리경제가
수용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은 그러한 변화에 대해 우리경제가
적응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새정부 들어선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의 경제정책은 경제위기에 대한 응급처방의 성격을 지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응급처방의 내용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일과 구조조정을 시동시키는 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새정부는 이 두가지 일을 무난하게 해 냈다.

외환과 금융위기는 일단 벗어났으며 국가신용도 회복되었다.

기업과 정부,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 대한 구조조정도 아직 미흡하지만
일단 시동시키는데는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지금 경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실업률은 내려가고 있다.

주가는 크게 올랐고 소비와 투자도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

하반기에는 부동산시장도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경기회복의 과속을 우려하는 소리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 경제팀이 출범하는 것이다.

새 경제팀이 할 일은 응급조치가 완료된 환자를 넘겨 받아 평상적 요법으로
완치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을 정착시키고 완결시켜 후반
코스의 주행을 시발시키는 일이다.

전반 코스가 도약적 성장이라 한다면 후반 코스는 성숙적 성장이다.

성숙적 성장이란 시장경제와 시민적 참여,그리고 민주적 자율질서속에서
삶의 질을 선진화하고 성장 평등 복지가 함께 가는 경제성장을 뜻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새 경제팀이 해야 할 주요 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경기회복과 구조조정의 조화있는 추진이다.

이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국제수지의 흑자기조는 지속되어야 할 것이며 금리도
현재의 한자릿수가 계속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의 구조조정노력도 풀려서는 안 될 것이고 국민소비와 임금도
계속 자제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기가 호전될수록,그리고 위기를 넘겨 긴장이 풀릴수록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조정은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소비가 늘고 투자가 늘면 수입이 크게 늘어 국제수지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며 그러한 징후가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상수지가 지난해와 올해의 두해만 흑자를 기록하고 내년
또는 내후년부터는 다시 적자시대로 반전되는 사태도 예상해야 할 것이다.

물가문제도 안심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국내경기의 침체와 세계불황 때문에 물가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마음놓고 돈을 풀어 은행부실문제도 해결하고 금리도 낮게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 경기가 회복되고 국제원자재 값이 오르면, 그리고 풀린 돈이
소비외 투자를 자극하게 되면 내년이후의 물가문제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금리도 기업투자가 얼어부터 있는 데다 돈이 많이 풀려 낮게 유지되고
있지만 기업투자가 살아나고 인플레 때문에 통화당국이 돈을 회수한다면
다시 두자릿수로 되돌아갈 우려가 있다.

이런 점에서 경기회복과 구조조정을 조화있게 추구하는 정책배합이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제는 의식주의 기본수요충족을 위한 틀로 짜여져 있다.

이것을 "삶의 질"쪽으로 바꾸려면 과감한 개혁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예컨대 맑은 물을 마시기 위한 환경문제, 노후보장을 위한 연금문제,
사회형평을 위한 금융종합과세문제,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수도권과잉 집중
대책 등 모두가 획기적인 개혁의지가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사회갈등과 국민욕구불만을 해소하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경제가 불황으로부터 회복되는 국면에서 사회갈등과 국민욕구불만이 노출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내년 선거를 앞둔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다.

노사간의 갈등, 노임문제, 실업자들의 생계문제, 사회적 소외계층의 문제,
그리고 교통난 의료난 교육난 등으로 인한 국민욕구불만이 분출될 우려가
크다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