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 미국 FRB 의장 >

컴퓨터 및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금융투자기법도 혁신적으로 발전되고 있다.

이에따라 투자위험도가 크게 줄어들면서 파생금융상품들이 주식과 채권같은
전통적인 금융상품들을 밀어내고 있다.

파생금융상품들은 내부지향적이고 보호주의적인 경제체제를 무너뜨린다.

이를 통해 국제금융시스템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국제 자본의 이동 규모는 지난 97년 이후 잉여자본이 크게 늘어난 선진국
들이 투자선을 다변화하면서 거대해지고 있다.

신흥시장으로의 순자본유입은 지난 90년부터 최근 외환위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4배가량 늘었다.

그러나 이들 신흥시장은 이 자본유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신흥시장은 선진국 자본이 원하는 만큼의 수익을 올려주지 못했다.

지나치게 많이 들어온 외자는 부동산에 묶이는 등 무분별하게 투자됐다.

아시아에서는 국내 금리가 오르는 동안 달러를 싸게 빌려와 이를 보유하는
게 화폐가치 하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져 왔다.

국제금융사회가 금융 및 법적 토대를 정교하게 세우는데는 수십년이 걸렸다.

이 정교한 토대는 강한 통화를 투기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투기적인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펴는 다양한 정책들의 충격을
국제 금융시스템이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국제금융시장에 들어온 신흥시장경제들은 아직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볼에 익숙해지지 못한 풋내기나 마찬가지다.

신흥시장경제의 환율도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이 튼튼하다면 걱정할 게
없다.

선진국 금융기관들의 부채도 굉장히 많다.

그렇지만 투자자들과 감독기관이 정확하게 감독하는 덕분에 한 은행의
부실대출 문제가 국제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위기가 증명하듯이 신흥시장경제들은 부채가 많으면서도
제대로 된 감독기능은 갖추지 못했다.

외국 자본의 갑작스러운 철수에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가 단련되기
전에 단기자본 유입이 이뤄지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신흥시장경제들이 국제금융시스템의 기준을 충족시킨다면 새롭고 아주
민감한 국제금융시스템이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신흥국가들이 이 기준을 충족시킬수 있는 길은 많다.

우선 각국의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감독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국제금융구조가 갖고 있는 글로벌한 위험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와
금융기관 기업들은 더 자세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만일 지난 97년에 태국과 한국의 중앙은행들이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좀 더
정확한 자료들을 공개했더라면 위기가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총외환보유고가 아닌 순외환보유고에 대해 솔직하게 밝혔어야 했다.

위기의 징후가 좀 더 빨리 공개됐더라면 부적절한 자본 유입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고 정책 결정자들은 어렵더라도 조기에 결단을 내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진10개국(G10) 중앙은행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외환보유액 공개 등
모든 나라들의 경제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국제기준을 마련중이다.

이 기준은 유동성이 높아 언제라도 드나들 수 있는 핫머니(단기투기자본)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기본틀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제금융을 취급해 본 경험이 많지않은 나라들은 해외에서 신규차입을 하지
않고도 얼마동안 견딜 수 있도록 외환보유액과 외채규모 및 구성비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가용외환보유액을 상환예정액보다 높게 유지해야 한다.

이는 해외에서 조달한 부채의 만기를 적어도 3년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부채의 만기가 길수록 위기 때 부담이 적다.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위기발생시 채권 값어치가 줄어들어 함부로 위기
발생국에서 철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단기투자자들은 손해가 상대적으로 적어 쉽게 빠져나가게 마련이다.

어떤 나라의 대외채무중 단기채무의 비중이 높다면 외환보유고 부족은 곧
위기를 의미한다.

신흥시장경제들은 대부분 외자를 도입할 때 자금조달비용을 최소화하는 데만
신경을 썼다.

조달비용은 좀 더 들지만 훨씬 안정적인 장기채무의 장점을 무시했다.

새로운 파생금융상품의 위험들을 예측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면 부채를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

건전한 통화 및 회계정책 역시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분명히 필요하다.

과거의 금융위기들은 모두 이것들이 결여된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신흥시장경제들의 부적절한 거시정책은 위기의 주된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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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 20일
미국 하원 은행위원회에서 행한 연설문을 요약한 것이다.

< 정리=김용준 기자 dialec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