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새 경제팀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제 받아든 임명장의 묵향이 아직 생생할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 감각이 가시기도 전에 감히 졸고를 올리는 것은 기자의 만용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자천려라 여기고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새 경제팀에 대해 어제 들은 시민들의 반응부터 전해 드리겠습니다.

한마디로 "뭐가 달라지는 거냐"는 것이었습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고인격이라는 얘깁니다.

명색이 경제기자인 저도 답변을 못했습니다.

물론 "능력을 검증받은 인물들"이라는 호의적인 평가도 있습니다.

정책의 일관성이란 측면에서 바람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제팀의 면면은 지나치게 낯익은 얼굴들입니다.

1기 경제팀과의 차별성이 안보입니다.

여기서 걱정되는 것은 경제정책에 종종 나타나는 "관성의 법칙"입니다.

"지금까지 잘돼 왔으니 앞으로도 이대로만 가자"라는 인식입니다.

과거 86-88년의 3저 호황때가 그랬고 IMF 직전의 반도체 호황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지금은 경제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정책도 그 변화에 기민히 대응해야 합니다.

새 경제팀이 국민들의 이런 걱정을 불식하려면 발상의 전환을 보여 줘야 할
것입니다.

자질구레한 아이디어 차원의 변환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얘깁니다.

산업화 시대의 정책 패러다임은 이제 벗어던지고 탈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
을 채택해야 합니다.

그 변화는 "시장기능의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장관들께선 산업화시대를 살아오고, 산업화시대에 성공한 분들입니다.

혹여 정부가 자원을 배분하고 산출하는 사고와 자세를 그대로 견지하면서
''자만''하고 계신건 아니신지요.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지금은 탈산업화 시대입니다.

투입과 산출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산출을 조절할 수 없습니다.

정부보다는 시장의 기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장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특정기업의 경영권을 운위하거나 대기업의 업종선택에 간여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참을성을 갖고 시장에서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바른
길입니다.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자고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한다면 "교각살우의 우"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국민들의 경제의식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높아졌다는 사실도
말씀드리고 싶은 대목입니다.

IMF나 모럴 해저드 같은 용어는 이제 더이상 식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놈은 얼마전 학교에서 "1달러가 1천원에서 1천5백원
이 되면 어떤 것들이 달라지나"라는 숙제를 받아왔습니다.

저의 "국민학교"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다음으로 보다 실제적인 측면에서 새 경제팀에 건의를 올립니다.

첫째 전임 경제팀으로부터 넘겨받은 과제들을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제 나름대로는 그 과제가 <>지속가능한 성장기반의 구축 <>거품 견제
<>구조조정의 완료 <>분배구조 개선 <>시장경제원칙의 확립 등이라고 생각
됩니다.

덧붙여 이들 과제를 수행하는데 있어 정책의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해 주기를
바랍니다.

사실 그동안은 국가부도의 수렁을 벗어나는데 급급해 좌고우면할 겨를 없이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벼랑끝에서 한발짝 물러났으므로 어느 길부터 먼저 가야할지를
살펴야 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환란의 과정에서 붕괴된 성장기반을 재구축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여겨집니다.

두번째는 경제팀의 호흡조율입니다.

시장이 가장 기피하는 현상중 하나가 정책방향에 대한 혼선입니다.

유감스럽게도 1기 경제팀은 퇴임 직전에 금리 등의 문제를 놓고 시장에
엇갈린 신호를 보낸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최근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신설된 경제정책조정회의에 기대가
모아집니다.

특히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강봉균 신임 재경부장관의
역량이 주목됩니다.

다만 정책조정도 이제는 권위에만 의지해서는 안되며 "시장을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의 "부처경쟁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사족으로 달아둡니다.

끝으로 경제정책이 정치논리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점을 당부하며 마치고자
합니다.

내년에는 총선이 예정돼 있고 내각제 개헌논의라는 시한폭탄도 잠복해
있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특히 총선시기가 다가올수록 "IMF 극복"이라는 프로파갠더적 슬로건이
남발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 경우 기업, 근로자 등 경제주체의 욕구가 분출돼 구조개혁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입니다.

따라서 새 경제팀은 보다 냉철한 판단으로 정치의 계절에 임해야 한다는게
국민들의 바램입니다.

< 편집국에서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