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교수 / 경제학 >

지구상에는 대충 1백80속, 9백종의 박쥐가 살고 있다.

박쥐는 주로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 미국 남서부에 서식하지만 남부의
열대우림지대와 사하라 사막에도 살고 있는 종류도 있어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살고 있는 셈이다.

날개길이가 약 2m나 되고 몸무게가 1.5kg이나 되는 여우박쥐가 있는가하면
가장 작은 태국산 호박벌 박쥐는 겨우 1센트짜리 동전 무게라 한다.

수명은 4년 내지 30년쯤으로 종에 따라 다양하다.

6개월 내지 2년만에 성숙해 열매, 꽃, 잎사귀, 곤충, 물고기, 개구리,
파충류, 작은 포유류, 척추 동물의 피를 먹이로 한다.

중국에서는 박쥐를 뜻하는 복이 복과 음이 같은 연유에서인지 복의 상징으로
보아주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박쥐문양의 노리개, 도자기, 궤짝 금속붙이 장식
등으로 귀하게 다루어졌다.

그런데 서양문화권에서는 복수의 여신, 악마의 상징 등으로 저주받는 존재
였다.

이솝우화 속에서도 짐승 편에 섰다 새 편에 섰다 표리부동하다 두 편서 모두
따돌림당한 신세가 박쥐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박쥐는 포유류 중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동물이다.

빨리 날면서 박동의 되울림으로 주변 사물과 먹이를 잽싸게 탐지하는 소나
장치를 내장하고 있다.

박쥐는 한시간 내에 6백마리 이상 모기를 포식한다.

열대우림지대에서는 초목의 꽃가루 수정을 하고 씨앗 파종에 가장 중요한
일꾼이 박쥐다.

인간이 즐기는 바나나, 아보카도, 바닐라, 복숭아 등이 박쥐 덕분에 열린다.

박쥐똥 구마노는 질산칼륨이 풍부해 훌륭한 비료이자 화약의 원료로 쓰이
기도 한다.

이렇게 이로우면서도 다수의 박쥐 종들이 인간의 몰이해로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다.

세계적인 희귀종 붉은 박쥐는 온몸이 오렌지 빛으로 일명 황금박쥐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남부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황금박쥐가 지난
2월 TV화면으로 공개되었다.

야생동물이면 무엇이나 정력보강에 좋다고 맹신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미칠까
두렵다.

박쥐 얘기가 길어졌다.

인간세계에도 박쥐인간은 없는가.

정치권에는 철마다 당적을 옮기고 언행으로 당 소속을 알기 어려운 정치인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면서도 몰이해의 먹구름에 가려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제주체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97년 환란 이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일등공신은 일부관료와 정치인이
아니라 근로자들이다.

정리해고, 명예퇴직 등으로 일자리에서 선뜻 물러난 해직자들 때문에 노동
시장에 유연성이 생기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들은 비유하건대 황금박쥐처럼 진귀한 존재들이다.

요즘에는 붉은 머리띠 두르고 파업을 선동하는 노조원들이 노동계를 대변
하는 듯 우리의 관찰시야를 어지럽힌다.

실제로는 노동시장에서 노조결성에 참여하지 않은 부분이 노조화된 부분보다
훨씬 크다.

노조가 강하기로는 공기업과 대기업 부문이 대표적이다.

이 부분의 임금수준은 중소 또는 영세기업의 그것보다 몇배나 높다.

철밥통을 지키고자 시위하는 노동시장의 상층구조 아래에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무조건에서도 열심히 일해야하는 일꾼들이 하층구조를 이루고 있다.

유연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상층구조의 임금상승은 하층구조의 임금희생을 밑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누구나 기피하는 기피업종의 3D가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스러운(dangerous)"일이라는 뜻에서 "바람직하고(desirable), 보람있고
(deserving), 품위있는(dignifying)" 일자리라는 뜻의 새로운 3D부문이
되도록 일터 분위기와 작업조건이 바뀌어야 노동시장의 하층구조가 든든해질
것이다.

상품을 생산해 소비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근로자에게 일터를 제공하여
소득을 주고, 조세를 납부해 정부살림을 가능케 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본질이다.

대기업을 비롯한 일부기업과 기업인의 탈법행위에 가려 기업의 본질 자체가
오해되고 모든 기업인이 곧 파렴치범으로 몰리는 것이 요즘 세태다.

기업이 지은 집에서 자고, 농민(비법인 기업의 일종)과 기업이 생산한
음식으로 식사하고, 기업이 만든 차로 출근하고, 또 기업에서 일해 소득을
얻으며 사는 사회에서 기업비판론이 팽배하다면 건전한 사회일 수 없다.

기업이 제공하는 자금에 기생하는 정치권과 언론계의 비판이 가장 따갑다.

박쥐 중에는 가축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박쥐가 있어 목축업계에 피해가
크다.

그러나 흡혈박쥐는 소수이고 대부분 박쥐는 인간에게 유익하다.

우리는 소수의 흡혈박쥐와 대부분의 박쥐를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열대과일을 탐닉하면서 박쥐를 나무라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