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데일리 미 상무부 장관은 이달 초 뉴욕의 한 연설에서 제2의 글로벌
경제위기설을 개진했다.

97년과 98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금융 대란이 이번에는 무역 분야로 옮겨져
세계적 통상 대란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그의 이같은 지적이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에 대한
대외적 경고를 담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최근 돌아가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데일리 장관의 이런 경고가 실제 상황
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예견케 한다.

20일(현지시간) 미 상무부가 발표한 3월중 무역 통계도 그 중 하나다.

지난 3월중 미국의 무역적자는 1백97억달러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
했다.

많아야 1백81억달러 정도 되지 않겠느냐던 전문가들의 예상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대폭적인 수입 증가 때문이다.

지난 3월의 경우 수입이 9백72억2천만달러어치에 달했다.

견실한 성장과 저물가 등 신경제의 호시절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이라지만
무역수지 문제에는 도통 속수무책인 상태다.

지난 18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조만간 금리 인상을 검토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정책이 다시 현행 금리
유지로 선회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이런 뉴스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당장 증시 등 경제 전체가 결딴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한국에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이 무역적자의 해법으로 주요 교역 상대국들의 시장개방 확대 및 대미
수출 억제를 요구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무역 적자의 주 원인으로 내수 침체에 빠진 아시아
및 중남미 국가들의 소나기식 대미 수출을 꼽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일본 중국 및 유럽 등지의 주요국들과 쌍무적인 통상 전투를
재개한지 오래다.

최근에는 유럽과 항공기 바나나 등의 무역 현안을 놓고 세계무역기구(WTO)
까지 가는 등 교전 범위를 무차별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오죽하면 유럽연합(EU)의 리언 브리턴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이런 미국을
"깡패 국가(rogue state)"라고까지 원색적으로 비난했을 정도다.

바깥 흐름을 놓친채 느닷없이 외환 위기를 당했던 한국의 민관 관계자들이
이렇듯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글로벌 통상 기류를 어떻게 읽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 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