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경제적 성취로 자아 도취에 빠져들고 있는 지금이 한국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다"

"비만증 환자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금 낮췄다고 해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할 수는 없다"

27일 뉴욕의 코리아 소사이어티(회장 도널그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주최로 열린 한국 경제 대토론회에서 월가의 주류 논객들이 쏟아낸 말이다.

이날 맨해튼 렉싱턴가의 시티코프 센터에서 한국의 경제 회복과 금융제도
개혁 전망을 주제로 열린 대토론회에는 97년말 외환 위기 당시 한국 정부의
경제 자문역을 맡았던 로버트 호매츠 골드만삭스 부회장 및 제프리 셰이퍼
살로먼스미스바니 부회장이 사회자로 나선 것을 비롯, 월가의 내로라 하는
한국통들이 대거 참석했다.

모건스탠리의 월터 보프 부회장과 무디스사의 톰 번 한국담당 부사장,
메릴린치의 칼 아담스 글로벌 실장, 메트 생명보험의 올리버 그리브스
부사장, 베어 스턴스의 한국계 데이비드 전 이사와 스커더 켐퍼의 존 리
코리아 펀드 매니저 등이 마이크를 잡고는 한국 경제에 대해 거칠 것 없는
충고와 비판을 토해냈다.

이날 대토론회 참석자들의 한국 경제 개혁에 대한 중간 평가는 대체로
"제도 개혁 등 총론은 그만하면 됐으니 이제부터는 실물 부문에서 각론
차원의 결실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개혁 드라마는 대통령 1인극과도 같다"

"관료 집단이나 기업들에게서 진정한 개혁 의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는
얘기도 나왔다.

외환 위기를 탈출하는 과정은 대통령 1인의 강력한 리더십 만으로도 가능
했지만 이제부터의 본격적인 구조 조정 작업은 관료와 기업 사회의 총체적
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불가결하다는 충고였다.

한국이 자랑하고 있는 경제 회복이 단순히 외환 위기 이전 수준으로의
복귀 라면 오히려 독약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윌리엄 데일리 미 상무 장관을 대신해 기조 연설을 맡은 마조리 시어링
상무부 차관보는 "태풍으로 무너진 집을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짓는 일은
무의미할 뿐이며 언젠가 또다른 붕락을 당하고 말 것"이라며 "태풍이 불어
닥치더라도 끄떡없는 집을 새로 지을 수 있는 공법을 개발하는 것이 옳은
해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가 구조 조정을 구실로 수출업체들에 보조금을 주는지
여부를 엄정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엄포를 놓는 등 한미 통상 현안에
대해서도 강도높은 경고를 내놓았다.

한국 정부의 구조 개혁 해법이 지나치게 징벌적 이라는 따끔한 비판도
있었다.

정부가 미주알 고주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는 현재의 방식보다는 잘하는 기업에 상을 주는 동기 유발적인 시장
시스템을 개발하는 작업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월가의 대표적인 한국계 논객인 베어 스턴즈의 데이비드 전 이사는 이와
관련, 회사채 유통 시장을 육성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이 경우 기업들의 경영 내역에 따라 금융 비용이 큰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고 자연스레 기업들이 철저한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끔 환경이
부단히 조성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최근 단행된 한국의 경제팀 개각도 관심사로 거론됐으나
경제 개혁 과제를 실무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전문 관료 위주로의 현실적인
진용 개편(존 리 코리아 펀드 매니저)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