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이 방북기간중 누구를 만나, 무엇을 설명
했을까.

또 이에 대한 북측의 반응은 어땠을까.

최대 관심사중의 하나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북한측에 한.미.일 3국의 진의를
알리고 반응을 듣는다"는 당초 방문목적은 모두 달성했다.

페리는 이번 방북기간중 보안상의 이유로 본국은 물론 한국정부와도 일체의
통신을 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 면담을 제외한 페리의 모든 일정은 북한측과 사전에
합의된 것"이라며 "28일 오전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의 만남이 마지막
공식일정"이라고 밝혔다.

페리는 방북기간중 노동당, 군부, 내각의 실세들을 두루 만나 대북포괄
협상안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북한 권력서열 2인자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26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친서"의 내용은 페리가 미 대통령의 특사임을 확인하는 신임장 수준이었다.

페리는 또 노련한 대미협상통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만나 장시간
협상안을 설명했다.

강석주는 대외문제와 관련해선 김정일에게 "직보"해 결심을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북한 군부측 실세들과의 만남이다.

북한은 페리 조정관 환영행사에 이찬복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표와 이상우
소장을 잇따라 참석시켰다.

27일엔 김일철 인민무력상,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 조명록 국방위 제1부
위원장중 일부와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군부는 그간 대외협상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외무성의 배후에서
"비토권"을 행사해 왔던 집단이다.

페리로선 이번 방북을 통해 포괄적 대북협상안을 군 실세들에게 직접 설득할
기회를 가진 셈이다.

이밖에 노동당의 최태복 비서, 최진수 국제부 부부장 등도 페리와 만난
주요 인사들이다.

북한이 조선중앙TV 등 각종 매체를 통해 페리 조정관의 방북일정을 상세히
보도한 것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북한 관영통신들은 페리가 도착한 직후부터 페리의 면담인사, 평양시내
관광, 주체탑 참배 등의 일정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와 비슷한 관심도를
보이고 있는 것.

페리 미션에 대한 북한의 긍정적인 태도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
이다.

현재로선 북한의 반응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지만 북한이 페리 구상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표시를 한다면 한.미.일 3국의 대북 협상은 급류를 탈
전망이다.

우선 미국은 대북경제제재조치 해제를 포함한 다각적인 경제지원을 약속
하고, 일본도 북한과의 수교교섭에 적극 나서게 될 전망이다.

한국은 북한에 직접 차관을 제공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곧 한반도 주변정세가 "긴장완화"시대로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관련, "페리 조정관의 이번 임무는 북측에 대북권고안의
내용을 설명하고 북한의 반응을 직접 파악하는데 있다"며 "적어도 이런 관점
에서 페리는 제역할을 충분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