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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년 경북 예천 출생
<> 경북 대창고 서울대 수의학과 졸
<> 73년 삼성생명 입사
75년 중앙개발 전입
77년 제일제당 전입 부장 대우이사
90년 삼성중공업 조선부문 대우이사 이사
93년 삼성생명 상무이사
95년 삼성화재 상무 전무 부사장
98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부사장
<> 부인 이영숙 여사와 1남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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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창(50) 삼성화재 대표는 늘 현장에 있길 원한다.

마음만 그런게 아니다.

틈이 나는대로 영업현장을 찾는다.

웬만하면 색깔있는 와이셔츠를 입는다.

현장을 돌아다닐 땐 흰색 셔츠보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3월말 손해보험사 CEO(최고경영자)로선 처음으로 24시간 보상
직원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모든 임원에게도 심야 보상근무를 명령했다.

당시 서울 중앙보상사무소에서 밤 근무를 하던중 사고 접수가 들어왔다.

사고 현장에 직접 나가 고객과 해결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그때 보험사의 경쟁력은 보상을 잘해 주는 길 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달았다고 그는 말한다.

이 대표는 그날 이후 "찾아가는 서비스"를 외치고 다닌다.

한국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삼성화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28% 정도다.

10대중 3대가 삼성화재에 자동차보험을 든 셈이다.

이 대표는 정통 보험맨은 아니다.

73년 삼성공채 14기로 삼성생명에 입사했다는 점을 보면 보험쪽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2년만에 중앙개발로 자리를 옮겼고 다시 2년후 제일제당으로
갔다.

봉급쟁이의 황금시절인 과장 부장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마케팅 책임자로서 이른바 "1백년 전쟁"이라고 불리던 미원(현 대상)과의
조미료 싸움을 진두지휘했다.

이 때문인지 그에겐 마케팅 맨이라는 닉네임이 붙어다녔다.

제일제당시절 치열했던 시장 쟁탈전은 지난 93년 20년만에 첫 직장인
삼성생명으로 돌아왔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서열을 중시하고 보수적인 보험영업 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지역사령탑으로서 틈만 나면 영업소장들과 농구 배구시합을 하면서 스포츠맨
정신을 강조했다.

규칙을 지키는 정도 영업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95년 삼성화재 상무로 부임한 그에게 주어진 일은 경인본부장이었다.

당시 삼성화재의 지역 시장점유율은 18.7%.

업계 4위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1년만에 점유율을 24.9%로 끌어올렸고 1위가 됐다.

삼성화재는 7월초에 액면금액 5천원짜리 주식 1주를 5백원짜리 10주로
바꾸는 주식 액면분할을 단행한다.

지난 27일 열린 정기 주총에서 정관변경도 끝냈다.

삼성화재 주식은 현재 1주에 60만원이 넘는 대표적인 황제주로 꼽힌다.

이 대표는 "상장회사로서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액면분할을
실시키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주와 종업원 고객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주가 관리에 힘을
쏟겠다"며 "장세 영향을 받긴 하겠지만 향후 주가도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직원들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승리를 꿈꾸지 않는 사람은 이미
패배한 것이다"는 서양 속담을 얘기한다.

취미는 운동.

공을 갖고 하는 운동은 모두 좋아한다.

건강관리를 위해 반신욕을 즐긴다.

주량은 소주 반병이고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5갑씩 피웠으나 몸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자
곧바로 끊어버렸다.

< 송재조 기자 songj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