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시 엘 카미노 리얼가 2340번지.

실리콘밸리의 입구인 이곳에는 한 "이색" 벤처기업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집"이란 식당이다.

식당을 벤처기업이라고 부르는데는 무리가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배울 것 많은 "진짜" 벤처기업이란 걸 알 수 있다.

기자가 이 식당에 들른 때는 지난 주말.

저녁을 먹기엔 다소 늦은 오후 9시였다.

그런데도 식당앞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손님들도 미국인을 비롯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 러시아 등 "다국적군"
이었다.

하루 3백여명에 이르는 손님중 한국인은 10%도 채 안된단다.

한국 식당엔 한국인만 몰린다는 통설이 무색케하는 광경이었다.

주인 신영자씨(48)를 보니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뽀가스 가빠키기타(내일 또 오세요. 필리핀어)" "환잉 광린(어서오세요.
중국어)" "교와 기레이데스요(오늘 멋있어요. 일본어)" "바우 다차헤
(맛있습니까. 현지 인디언어)"

신씨는 영어를 포함해 일본 중국 베트남 러시아어 등 모두 8개국 언어를
구사한다.

영어와 일본어 필리핀어는 수준급이다.

나머지도 간단한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없다.

어떻게 그렇게 잘 하느냐고 물으니 "10년동안 손바닥에 적어가며 틈틈히
익힌 솜씨"라고 한다.

"한번 온 손님은 꼭 고객으로 만든다"는 이 집의 성공비결은 또 있다.

웃음과 친절이다.

바쁜 일속에서도 15명의 종업원과 주인 신씨는 웃음을 잃는 법이 없다.

처음오는 외국인 손님들에게는 주인이 직접 쌈장싸는 법까지 친철하게
알려준다.

이렇게 하니 IMF 이후 덩달아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는 인근 35개 한국
식당들 사정은 딴 나라 얘기일 수 밖에 없다.

이 지역 식당들은 이제 한국의 집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열심이다.

신씨는 이처럼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런데도 쉬는 날이 없다.

왜 남들처럼 놀러다니며 뒤에서 관리나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주인없는
식당에 손님들이 올 맘이 생기겠느냐"며 오히려 되물었다.

마인드가 왠만한 벤처사업가들은 저리가라다.

한국의 관광산업에 대한 문제점은 어제오늘 지적된 것이 아니다.

불친절과 언어불통, 서비스 부재라는 고질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간에도 손님들이 드는 "한국의 집"을 나서면서 관광
한국의 해법을 이런 곳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 실리콘밸리=박수진 국제부기자 parks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