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년 한국해양대 항해과를 졸업하고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한 이래
39년간 해운 외길을 걸어온 한국 해운의 산 증인.

우리나라가 세계 10위의 해운국가로 성장하는 데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특히 한국해양소년단연맹 부총재를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해양의 중요성을
불어넣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한 행사와 사회사업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진취적인 기상과 해양입국의
정신을 심어주는 노력을 쏟고 있다.

지난 70년부터 80년까지 동서울해운주식회사 상무이사로 재임할 때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을 오가는 정기항로를 국적선으로는 처음 개설했다.

외국선에만 의존하던 수출입 화물을 우리 국적선으로 수송할 수 있게 만든
전기였다.

80년 동우해운을 창립, 일본 K-LINE의 한국 총대리점을 맡아 국제적인
공신력을 높였다.

당시 국적선이 취항하지 않은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등 전세계 정기선 서비스
망을 최대한 활용, 수출화물 수송에 전력을 다했다.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은 물론 수출화물을 적기에 수송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게 경제계의 평가다.

지난 80년대말 자동차 수출이 해마다 늘고 있었으나 자동차 전용선 부족으로
애를 먹는 상황에서 일본 K-LINE의 자동차 선대를 끌어들여 자동차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난 83년이후 사단법인 한국선박대리점협회 이사를 맡아 업계의 권익옹호와
지위향상에 앞장서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