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정희(35)씨가 네번째 장편소설 "연애"(중앙M&B)를 펴냈다.

정씨는 96년 장편 "오렌지"로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이번 소설은 그가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처음 내놓는 작품이다.

그는 연애를 여행에 비유한다.

사랑의 행로가 "변변한 지도나 나침반, 믿을 만한 정보 하나 없는 막막한
여행"과 닮았으며 "단지 육감에만 의존해야 하는 이 여행에는 그러나 때로
보물섬을 향한 투지와 인디애나 존스를 능가하는 모험심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랑과 연애가 갖는 "고통의 윤회"는 또한 "즐거움의 윤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여성작가 지수가 잡지사 기자 선우의 원고청탁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사무적인 일로 만난 둘은 곧 서로에게 이끌려 위태로운 연애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지수는 아직 새끼손가락에 반지 자국을 남기고 있는 제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선우도 6년간 사랑을 나누었던 인경과의 상처를 안고 있다.

이들은 상대방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깊숙한 여행의 숲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사랑은 조급함과 집착을 동반하기 마련.

낯설지도 않고 익숙하지도 않은 여로를 지나며 둘은 차츰 여행의 끝을
예감한다.

연애에 수반되는 황홀과 고통의 감정들이 둘을 조금씩 지치게 하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 마침내 이별이 찾아온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별스러울 게 없다.

이 작품의 맛은 정씨 특유의 문체와 세밀한 심리묘사에 있다.

"그의 손은 알맞게 닳은 비누처럼 부드럽고" "그의 손을 잡는 것은
수화기를 집어드는 것처럼 간단한 동작에 불과했지만 타인의 손에
내 손이 닿으면서 생겨나는 무수한 울림을 나는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같은 표현이 밀도있게 전해온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