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들러리입니까"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사장추천위원회가 비공개로 열린 7일.

한 추천위원은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다.

산업자원부의 "이중플레이" 때문이다.

산자부는 그동안 "사장추천위가 자율적으로 한전사장 후보를 뽑는다. 후보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잡아떼 왔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전의 사장후보를 사실상 내정했다.

점찍은 인물을 추천해달라고 사장추천위원들에게 종용하기까지 했다.

산자부 정장섭 자원정책실장 등 고위간부들은 최근 한전사장 추천위원회
개최에 앞서 추천위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사장추천위의 한 위원은 "최근 산자부 고위간부로부터 모씨를 한전사장
후보로 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다른 한 추천위원도 "정부가 겉으로는 공기업 사장추천위를 자율운용토록
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는 거수기로 전락시키고 있다"며 산자부를 성토했다.

이들 한전사장 추천위원의 대부분은 산자부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추천위원 15명의 면면을 보면 산자부가 예산권을 쥔 산자부 산하기관의
임원과 친산자부 인사가 많다.

게다가 한전의 사외이사 8명을 제외한 민간추천위원 7명중엔 요즘 각종
위원회에 들어가는 소비자.시민단체의 관계자가 한 명도 없다.

한전의 최대소비자인 일반국민을 대표하는 인물이 한 명도 참석하지 못한
채 한전의 사장추천위는 열렸다.

사장추천위에선 최수병 신용보증기금이사장(전 보건복지부차관), 한갑수
한국가스공사사장, 한영성 한전고문(전 과학기술부차관) 등 3명이 유력후보로
추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고위층과 산자부가 연합해 만든 각본 대로다.

이들 중에서 한 명이 산자부 장관의 제청과 대통령 재가를 거쳐 오는 11일
한전 주주총회에서 사장으로 선임된다.

사전각본설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솔찍히 한전주식의 53.1%를 가진 정부
가 주주권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새 정부는 지난 2월 공기업 사장추천위원회 제도를 도입했다.

방만한 공기업을 효율위주로 개혁하기 위해선 각계의 추천을 받아 전문경영
인을 수혈한다는 취지였다.

이후 정부는 지난 4월 황두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사장을 임명하면
서 이 제도를 처음 적용했다.

이 때도 뒷말이 무성했다.

한전사장 선임이 겨우 두번째인 공기업 사장추천위.

유명무실했던 과거 정권의 공기업 사장공모제도를 보는 것같아 씁쓸하다.

< 정구학 산업1부 기자 cg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