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선 < 가원중학교 교사 >

지난 3월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우리 반 어머니들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을 하루에 1번 이상 꼭 안아주세요. 그렇게만 하시면 사랑받은 그
힘이 아이들 속에 숨어 있어서 별탈없이 사춘기를 지나갈 거예요"

나의 이 말에 어머니들은 중학생쯤 되니까 덩치가 너무 커서 징그럽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당부했다.

"어머니들이 안아주지 않으면 누가 안아주나요. 처음엔 쑥스러워하고 피할
거예요. 그래도 안아주세요. 하루에 한 번씩만 꼭 안아주시면 아이들이
살아갈 매순간마다 큰 힘이 될 거예요"

내가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지난 95년 담임반 아이들과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그해 연극놀이를 하면서 사람들의 표정이 몸으로 서로 부딪칠 때 훨씬
밝아지는걸 느끼고 우리 반 아이들과도 "몸으로 인사하기"를 시작했다.

남자 아이들과는 악수를 했다.

손가락으로 내 손을 간지럽히는 녀석, 손바닥 가득 싸인펜 칠을 했다가
내 손에 묻히고는 의기양양해 하는 녀석, 내 옷만 살짝 만지는 녀석 등
짖굳은 행동을 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가벼운 스킨십은 사제지간의 벽을
허물었다.

여자애들은 더욱 감성적이었다.

내 손을 따뜻하게 감싸는 아이, 살짝 안겨 오는 아이 등등...

처음에는 몸으로 인사하기를 약간은 장난스러워하고 약간은 어색해
하더니만 어느새 내가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선생님 몸으로 인사하기
안해요" 하고 상기시켰다.

그해 봄 소풍날.

"선생님 같이 가요" 하고 몇 명의 아이들이 내 팔짱을 끼자 옆으로 옆으로
또 팔짱을 껴서 열명 넘는 아이들이 발 맞추고 노래부르며 소풍길을
걸어갔다.

벚꽃나무 아래 여자애들이랑 나랑 앉아 있자 남자애들이 벚꽃을 눈처럼
뿌려주던 기억도 새롭다.

10여년간 아이들과 함께 지내온 학교 생활 중 그해 봄소풍의 기억이 가장
평화롭게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다른 해보다 유난히 그해 제자들이 스스럼없이 내 팔짱을 낄 수 있었던
힘은 뭘까.

난 그 힘이 그 아이들과 함께 한 "몸으로 인사하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혼나고도 조금 지나면 나를 향해 웃던 얼굴들.

아마 아이들은 나랑 손잡거나 껴안은 기억을 통해 선생님이 자기를 사랑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10여년의 교직생활을 통해 아이들은 말로 하는 것보다 머리 한번 쓰다듬은
것, 손 한번 잡아주는 것을 훨씬 오래 기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물론 나만의 것이 아니다.

"말썽꾸러기랑 이야기할 때 손 꼭 잡고 눈 맞추며 이야기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 애가 달라져요"

동료 선생님의 얘기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