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65).

그는 젊은 시절 극장간판을 그리던 "환쟁이"였다.

그림은 오로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남들이 감상할만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에게 사치나 다름
없었다.

그런 그가 화가로 대접받게 된 것은 노산 이은상 선생의 주선으로 안중근
의사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부터다.

나이 40줄에 들어섰을때다.

"진짜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무렵이다.

이때부터 그의 화명은 세상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고 박정희 전대통령내외와 닉슨 전미국대통령,사우디국왕등 국내외 수많은
유명인사들의 초상화가 그의 손을 거쳤다.

장르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조다.

극장그림과 맥을 같이해 자연스럽게 이 분야를 택했다.

그림그리기도 어렵거니와 품이 많이 들어 남들이 꺼려하는 분야다.

이런 독특한 장르로 74년 산수화를 그려 국전에 출품, 처음으로 입선했다.

그이후 78년 동아미술상수상과 중앙미술대상 특선등 각종대회에서 상을
탔다.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며 노력한 결과다.

이상원 화백의 그림인생을 정리하는 해외전시회가 16일부터 29일까지 파리
살페트리에르전시장에서 열린다.

전시주제는 "흐르는 시간에 대한 시선".

지난해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세번째 해외전시다.

출품작은 인물화를 중심으로 모두 30여점.

5.5m짜리 초대형작품을 포함해 1백호이상 대작들만 걸린다.

삶의 현장을 소재로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인물화가 많다.

노인과 장년들이 등장하는 최근작 "동해인" 시리즈에는 어부들과 노인들의
삶의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다.

저녁늦게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할머니, 밤바다에서 사투하듯
그물을 끌어올리는 할아버지, 고기떼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담뱃불을 붙이는
촌로등.

생존의 몸부림과 삶의 진지함을 느끼게 하는 이러한 소재들은 그어떤 인물화
보다 강한 호소력과 흡인력을 갖는다.

특히 수염과 머리카락,깊게 패인 주름살 하나하나가 모두 묘사돼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작가의 서러움과 한이 표출된듯 쓸쓸함도 풍기고
있다.

그는 세상에서 쓸모없다고 버려진 것들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흙속에 구겨져 묻힌 신문지, 첩첩이 포개진 마대, 폐타이어의 집적, 고목에
핀 꽃순등도 역시 즐겨 그리는 소재들이다.

이상원 화백의 아들 승형씨(갤러리상 관장)는 "부친은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작품을 보면 항상 포근한 인간애를 느끼게 한다"고 밝혔다.

(02)730-0030

< 윤기설 기자 upyk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