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작가 >

왕자병에 걸린 애인.

그의 이름은 G다.

첫 인상은 정갈했다.

무척 신사적이었으며 수준도 높아 보였다.

"내 말을 너무 잘 듣는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에는 소년처럼 모든
게 순순했다.

그러나 만나는 횟수가 늘고 내가 자기한테 빠졌다는 것을 알자 G는 서서히
변해갔다.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할 것 같았던 G는 날이 갈수록 도도해졌다.

공들인 만큼 돌아 오는 게 없었고 툭하면 퉁겼다.

그럼에도 G에게는 묘한 영특함이 있었다.

떠나겠다고 맘 먹으면 그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그때부터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G는 골프(Golf)다.

죽을 쑤면서 "너와 다시 노나 봐라"하면 마지막 몇 홀에서 볼이 솔솔
나간다.

선배들 말로는 "다음에 또 나오라고 살살 꼬드기는 거"라고 했다.

어느날인가 난 G에게 죽자 사자 매달리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꼭 스윙의 뭔가를 깨닫겠다"며 이른 아침부터 연습장엘 갔다.

난 몇시간이나 윽박지르듯 G와 싸웠다.

그러나 내가 성질을 내면 낼수록 그는 징그럽게 말을 듣지 않았다.

포기도 못하는 고민.

"얘는 정말 너무하는구나" 바로 그때 누군가 명쾌한 충고를 했다.

"요즘 골프랑 사귀냐? 그렇게 밀고 당기고 하게. 그앤 속이 좁아서 너무
잘 토라진다. 같이 싸우면 네가 지게 돼. 방법은 하나. 그래도 진심으로 사랑
해 주는 것뿐이야. "알겠다. 내가 질게.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널 무한정
사랑한다" 그런 식으로 한술 더 뜨면 지가 어떻게 할 건가. 맞아도 좋고
안맞아도 좋다는데"

그렇다.

거기에 정답이 있었다.

무한정 사랑을 주는 거다.

"안맞아도 좋다"는데 도대체 어쩔텐가.

언젠가는 고개 숙이고 내게 항복할 날이 있겠지.

또 항복 안한들 어떠리.

그와 밀고 당기면서 평생 스릴있게 살수 있을텐데.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