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권구 < 국립대구박물관장 >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점차 따뜻해지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는 자연에만 의존해 단순히 식물을 채집하거나 동물을 사냥하는 단계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바로 농경을 시작하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생업상의 변화는 도시출현이나 문명발생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이같은 문명은 현대 과학문명의 기원이 됐다는 면에서 그 의미가 자못 크다.

그래서 농경의 시작을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1만년전에 일어난 생업상의 변화를 혁명이 아닌 "계속적 변화
과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구석기시대 이래 인류가 환경에 적응해오면서 동.식물의 생리적 발육상의
특성을 관찰힌 다음 그 생육과정에 보다 비중있게 개입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그 과정이 혁명적이었는지 혹은 지속적이었는
지의 여부가 아니다.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식물이나 동물이 인간에 그 생육을 의존하게 됐고
인간도 동.식물에 식생활을 의존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벼, 보리, 밀 등의 곡식을 예로 들어보자.

야생상태에서는 볍씨, 보리 알, 밀알이 잘 익으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번식할 수 있도록 마디가 쉽게 떨어진다.

하지만 사람이 재배를 시작한 후엔 일부러 타작등으로 털어주지 않으면
마디가 잘 안 떨어지게 됐다.

그만큼 자신들의 생존을 인간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동물의 경우도 가축화되면 뿔이 둥그렇게 휘거나 해서 덜 위협적으로
변한다.

피부색도 단순해진다.

어쩌면 인간이 의도한 대로 식물과 동물이 변하고 인간도 그 과정에서 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야생종과 구분되는 현재 재배되는 벼, 보리, 밀과 가축의 형질을
가지고 있는 "아종"을 선택하여 잘 키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앞으로 연구를 계속해 보다 과학적인 해답을 밝혀야 할 과제다.

인류문명의 발달사와 생업변천사 속에서 동식물과 인간이 어떻게 상호관계를
맺으며 오늘까지 왔는지를 이해하려면 주변의 동식물에 대한 면밀한 관찰력이
더욱 필요할 것 같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6일자 ).